2016년부터 시작된 그의 기부는 지금까지 135억 정도(금액기준)다. 전 재산 2000억 원을 조선일보 통일나눔펀드에 기부하고 코로나19와 수해 복구에도 각각 20억 원을 기부한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보다는 적지만(그는 포브스 선정 ‘2016 아시아 기부왕’이다), IT 업계에선 단연 최고다.
그런데 김 의장의 기부 패턴을 보면 모두 현금이 아닌 주식 기부다. 업계에서는 보유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으로 가진 IT 창업자들의 기부 의욕을 북돋으려면 기부 관련 세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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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의장, 주식으로 5년간 135억 기부
17일 카카오에 따르면 김범수 의장은 최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억 원어치 카카오 주식 2800주를 기부했다. 김 의장은 지난 3월에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20억 상당 주식(약 1만1000주)을 기부했는데, 카카오 주가가 오르면서 기부 주식 수가 줄었다. △2016~2018년 아쇼카 한국재단에 35억 상당(약 3만주)의 카카오 주식 기부 △2016년~2018년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에 40억 원 상당(약 3만주)의 카카오 주식 기부 △2019~2021년 아쇼카 한국재단에 본인이 100% 지분을 가진 케이큐브홀딩스 주식 30억 상당(2만주)기부 등도 주식을 공익법인에 내놓은 형태다. 5년간 135억 정도의 개인 보유 주식을 기부한 것이다.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기부한 이유에 대해 카카오 측은 “개인적인 부분이라 저희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지만, 김 의장 지인은 “김범수 의장은 대부분의 자산을 주식으로 갖고 있고, 대주주로서 (성장하는)카카오 주식을 현금화하면 외부에서 부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주주 흔들림 없고 세금에서도 유리
김 의장이 맘 놓고 주식을 기부할 수 있는 것은 지분율과도 관계있다. 김 의장 본인의 카카오 지분율이 14.23%, 그가 100% 지분을 가진 케이큐브홀딩스가 11.31%로 카카오 2대 주주다. 올해 상반기 동안 기부로 김범수 의장 개인 지분율이 14.51%에서 14.23%로 떨어졌지만 미미한 것이다.
오히려 그는 국내 주식 부자 순위(인포맥스 집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7조7452억원)을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사업 성장으로 카카오의 주가가 2.36배 뛰어오르면서 김 의장의 카카오 지분 가치가 작년말(3조8464억원)보다 5조2371억원 증가한 9조835억원을 기록한 것이다. 국내 주식 부자 1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7조8435억원)이다.
주식 기부는 지분율 5%를 넘지 않으면 비과세 대상이어서 상반기 0.28% 주식(약 1만3800주·30억원)을 기부한 김 의장 입장에선 주식 기부가 현금 기부보다 낫다. 주식을 매도해 현금으로 기부한다면 매각 대금의 0.25%를 증권거래세(농특세포함)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이해진과는 다른 색..저커버그 같은 통큰 기부 한국선 어려워
김 의장의 기부 소식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비교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IT 산업을 이끄는 거물이자 거부(巨富)인데 이해진 창업자(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개인 기부 소식은 들리지 않아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해진 창업자의 네이버 보유 지분(3.72%)이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 지분(14.23%·특수관계인 포함 25.54%)보다 턱없이 적어 주식 기부가 쉽지 않다는 점 △이해진 창업자는 회사를 위해 본인 지분을 희생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기여 방식에 대해 김 의장과 생각이 다르다고 평가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가 코스닥 상장 당시까지만 해도 이 GIO의 지분은 7.82%였지만, 새롬기술과의 분쟁 해결하기 위해 이 GIO 개인 주식 1%를 새롬기술에 매도하는 등 회사를 위해 희생했다”면서 “2018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뒤 글로벌 진출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네이버는 이번 수해 복구 성금도 김 의장과 법인이 각각 10억 원을 기부한 카카오와 달리, 네이버 법인 명의로 15억 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부왕이 나오기는 어렵다. 저커버그는 2015년 자신의 페이스북 총 주식의 99%(487억 달러·약 56조3000억원)를 기부했는데, 162억 달러(약 18조8000억원)를 세금으로 물어야 한다. 그의 기부액은 페이스북 총 발행주의 15% 정도인데, 면세 상한선인 5%를 초과한 부분은 증여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에 주식을 기부할 때 지분율 5%까지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지만, 대주주가 전체 발행주식의 5%를 초과해 기부하는 부분은 최고 50%의 증여세를 매긴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오너가 공익재단을 활용해 변칙 경영을 할까봐 걱정해 만든 세법을 시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며 “디지털 경제로 바뀌면서 IT 주식 부자들이 더 늘어날 텐데 이들은 상속에 별 관심이 없다. 선한 기부를 늘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