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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28세이던 1988년 당시 대한민국 오토바이 판매의 중심이었던 대구 북성로에서 오토바이 판매점을 운영했다. 창업 3년 만에 매출 5억원을 올릴만큼 장사는 잘됐다.
그는 “1989년 우연히 방문한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이용률이 높은 모습을 보고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수리 및 판매사업을 시작했다”며 “사업 초기 오토바이 수리·판매가 잘 됐지만 무역과 언어에 대한 지식 없이 의욕만 넘쳐 1년 만에 투자금을 모두 까먹었다”고 전했다. 이후 중고 자동차 수출업을 했던 김 대표는 제조업 진출에 욕심이 생겨 목재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한 건설회사에 창문틀 등을 납품하는 사업을 진행했다”며 “하지만 사업 초기 외환위기로 우방, 보성 등 대구지역 건설업계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당시 경남 창녕에 건물 면적만 1만8512㎡(약 5600평)에 이르는 목재공장을 보유할 정도로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당시 취급하던 외환 규모도 1600만달러(약 17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사업정리하고 남은 채무는 280억원. 자산매각 등을 통해 채무일부를 변제했지만 빚 140억원이 남았다.
다시 중국에서 가구제조업에 뛰어든 김 대표는 한국으로 수출을 하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가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면 초기에는 모두 잘 됐다”면서도 “외환위기처럼 외부 경영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중국 사업도 실패한 그는 현지의 설비재산 등을 모두 처분하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수차례 사업에 실패하면 좌절할 법도 하지만 그는 친형과 함께 2009년 다시 가구사업을 시작했다. 과거 빚 때문에 개인파산신청을 한 탓에 형과 함께 사업을 한 것. 김 대표 명의로 사업자등록이 가능해진 지난해 2월 지금의 파란하늘퍼니처를 설립했다.
그는 재기의 비결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보고 뛰었던 점을 꼽았다. 김 대표는 “수차례 사업에 실패했지만 과거에 얽매인 적은 없었다”며 “실패한 일에 대해 얽매이기보다는 내일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자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내가 먼저 뛰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손을 잡아줬다”며 “과거에 사업할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줬기 때문에 재기가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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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후 전국 대형 가구 도매상들에게만 납품하던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 인터넷사업부를 만들어 쿠팡과 같은 소셜커머스뿐만 아니라 11번가, 옥션 등 종합 온라인쇼핑몰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재창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금이지만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에서 자금을 지원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과거 파산기록이 남아있어도 신보나 기보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현장 직원들은 아직도 자금지원을 꺼린다는 것. 그는 “과거 전력만 계속 거론하면 사실상 신보나 기보같은 자금지원기관은 재창업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20대부터 수차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가족들에게 마음고생을 시켰다”며 “큰 욕심 없이 사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은 게 마지막 남은 꿈”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