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빌 클린턴의 개입, 조지 W. 부시의 전쟁과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해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외교가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의회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프랑스 등 우방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반면 정책 변화에 따른 부담과 중국 등의 견제도 커지고 있는 만큼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달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서 반군이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정보기관별로 확신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 ‘사린’을 소규모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백악관 확인으로 최대 외교 이슈로 떠올랐다.
백악관은 이에 대해 “이 문제를 철저하게 가리기 위해 유엔(UN) 차원에서 그 증거를 수집하고 조사할 것이며 추가 정부를 얻기 위해 시리아 반군 등 각국과 협력할 것”이라고만 밝혔고 척 헤이글 국방장관도 “중대 사안인 만큼 모든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며 아직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6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가진 압둘라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과의 회담 전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정권이 국민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지난 2년간 시리아 문제에 대처해 온 미국의 대응에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화학무기 사용 의혹을 상황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사건으로 명명한 것 자체가 물리적 개입 가능성을 구체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어 “시리아 정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좀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민간인에 대한 이같은 살상무기 사용은 국제법이 정한 금지선을 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특히 시리아 정권에 대해 당장 오바마 대통령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화당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인 다이앤 파인슈타인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이 유엔 조사를 촉구하고 나선데 대해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즉각 시리아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은 화학무기 사용에는 원론적인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무력 개입에도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전날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중국은 어떤 국가든 무력 간섭을 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도 다른 국가의 군사개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지난 2011년 3월 시민 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7만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철저하게 불개입 입장을 고수해왔다. 무력 충돌을 우려하면서도 반군의 무장에도 반대하면서 야간 투시경과 통신장비 등 비군사 장비만 반군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 정보기관을 통해 반군이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무기를 수입해오는 일을 지원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는 적극적 개입으로 주변국들의 비난만 받았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 군사 행동으로 미군의 희생과 막대한 재정부담을 야기한 부시 전 대통령 정책과 다른 길을 걷겠다는 소위 ‘오바마 독트린(Obama Doctrine)’이었지만 이번 화학무기 의혹은 그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다.
현재 유엔은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단을 꾸리고 현지 조사를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지만 시리아 정부는 이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옴란 알 주비 시리아 공보장관은 러시아 방문 중에 “화학무기 공격은 알카에다와 연계한 반군 소행”이라고 반박했다.
일단 유엔은 반기문 사무총장을 통해 시리아 정부에 유엔조사단이 현지에서 화학무기 사용을 조사할 수 있도록 무제한 접근을 허가하도록 촉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미국 정부의 적극 개입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