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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후들 가슴은 짜릿 자연이 만든 ''놀이동山''

조선일보 기자I 2010.05.13 12:20:00

토박이 산행 - 영동 천태산

▲ 천태산 동쪽 능선의 A코스 암릉길. 고래 등처럼 매끈한 바위 뒤로 기막힌 산경이 펼쳐진다. / 조선영상미디어
[조선일보 제공] 산행은 일상의 동선을 벗어난 모험이다. 작은 산이라 해도 도시와 다른 야생의 환경이기에 위험은 산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등산 마니아들이 비싼 기능성 장비에 연연하는 것도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이 있어 산행이 행복하다. 도시를 떠나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인 산을 올라서는 건 어렵지만 짜릿한 쾌감이 있다. 쾌감의 구체적인 성분은 성취감과 스릴, 유산소 운동시 분비되는 엔도르핀이다. 충북 영동 천태산(714.7m)은 그런 땀내 나는 즐거움이 있는 산이다.

주차장을 나서니 천태동계곡을 따라 산길이 이어진다. 폭포도 있고 특이한 바위도 많아 얼핏 보면 깨끗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물이 탁하다. 상류에 마을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늘진 계곡을 오르다가 순간 시야가 확 트이면서 영국사가 보인다. 천태산의 기품 있는 바위줄기와 천년고찰은 그 자체로 자연 속에서 어우러진 풍경이다. 풍경을 완성하는 건 전설처럼 거대한 몸짓으로 솟은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호)다. 용문산 은행나무보다 키는 작지만 모양새에 안정감이 있고 오랜 세월을 버텨온 힘이 묻어난다.

영국사 오른편, 'A코스 입구'라고 적힌 안내판을 따른다. 솔 냄새가 기분 좋은 소나무숲을 지나자 환한 빛깔의 바위길이다. 고정로프가 있어 바위의 결을 만끽하며 어렵지 않게 오른다. 바위길 곳곳에 구경하기 좋은 전망바위가 있다. 전망바위에서 호흡을 가라앉히며 뒤돌아보면 영국사의 아담한 풍경 그대로 그림이다.

다시 오름길에 마주치는 건 벽, 이전의 바위길과는 급이 다른 가파르고 위압감 있는 75m 벽이다. 우회길이 있어 돌아갈 수도 있으나 산 좀 탄다 하는 사람은 지체 없이 줄을 잡고 오른다. 조금 무서워도 자연이 주는 기막힌 스릴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75m 암벽구간을 지나도 길은 여전히 가파르다. 레이저빔처럼 따가운 뙤약볕을 피하려면 남은 바위길을 빨리 통과하는 것뿐. 쿵쾅거리는 심장을 폭발시켜 꾸역꾸역 밀려오는 적군 같은 오르막을 주저 없이 처오른다.

주능선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푹신푹신한 육산이다. 경치 좋은 오름길과 달리 정상은 시원한 맛이 없다. 나무가 높아서다. 이정표의 'D코스'를 따라가는 하산길, 매끈한 바위와 잘생긴 소나무가 늘어섰다. 곳곳에서 놀이기구처럼 개성 있는 바위가 담력을 테스트한다. 능선을 내려서니 팽팽히 당겨진 근육을 흙길이 안심시키며 풀어준다. 놀이기구를 타고 나온 듯 유쾌한 표정의 사람들이 주차장에 가득하다.

산행 길잡이 


아기자기한 바위가 많아 놀이기구를 타는 듯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산이다. 그러나 초보자나 어린아이와 함께 오르기는 힘든 암릉산행 코스이다. A코스(주차장~영국사~암릉구간~정상)로 올라 D코스(정상~남고개~영국사)로 내려오는 게 일반적이며 B코스는 폐쇄되었고 C코스는 이용하는 이들이 적다. 여름 산행은 힘든 편이므로 봄·가을이 천태산 원점회귀 산행(별 다섯 개 기준 ★★★)을 즐기기에 좋다. 산행거리는 6.5㎞이며 4시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

천태산은 영동과 금산에 걸쳐 있으나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의 영국사가 일반적인 산 입구다. 경부선 열차로 영동역에 도착, 영동시내버스터미널에서 명덕리행 버스를 타고 누교리에서 하차해야 한다. 1일 6회(06:20, 08:10, 11:00, 13:10, 16:50, 19:10) 운행하며 40분 정도 걸린다. 누교리 버스정류소에선 지력교 다리를 건너 1.5㎞ 걸어야 천태산 주차장에 닿는다. 대중교통보다는 승용차나 산악회 대절버스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토박이 산꾼 배상우씨

천태산 등산로는 영동 토박이인 배상우(79)씨가 개발했다. 배상우씨는 "1985년에 만들어 1990년대 월간 산에 소개되면서 인기 산행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등산로를 개설할 때 "사람들이 스릴과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일부러 능선 위주로 길을 냈다"고 한다. 배씨는 산행 거리는 길지 않지만 재밌게 산행할 수 있는 곳이 천태산이라고 자랑한다. 그는 등산안내도를 만들어 등산객들이 한 장씩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A코스 입구에 갖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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