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있다. 고객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얽힌 배경과 스토리를 사면서 자신도 그 속의 일원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기업은 명품을 만들려고 애를 쓰며 명품은 다시 그 기업을 돋보이게 한다.
이데일리는 우리 기업들이 정성을 쏟아 만든 대한민국 대표명품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전하려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대표상품들의 위상과 현주소를 함께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더 많은 명품탄생을 희망한다. (편집자주)
경북 포항시 영일 만(灣) 앞바다. 날이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오징어 잡이 배들이 나타난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집어등(集魚燈)이 수평선을 환한 불빛으로 수놓는다. 밤 하늘 별빛과 어우러진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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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 개발을 위한 밤 샘 연구를 끝내고 공장을 나올 때면, 항상 이 불빛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실패와 재도전. 온 몸은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렇게 꼬박 15년이었다.
"언제쯤 저 불빛을 안볼 수 있게 될까…"
김득채 연구개발추진반 실장은 이 말을 수없이 되뇌였다고 했다. 결국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불안감도 느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연구와 테스트에만 매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올해 5월 30일. 포스코는 세계 철강사(史)의 새로운 장으로 기록될 파이넥스 상용화 공장(사진)의 완성을 공표한다. 지난 92년부터 지속된 600여 연구원들의 집념과, 회사의 전폭적인 투자가 이끌어낸 쾌거였다.
◇ "쇳물 생산 패러다임을 바꾸다"
파이넥스는 fine(가루)과 reaction(ex·공법)의 합성어. 포스코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쉽게 말해 자연상태의 철광석과 석탄 '가루'로 쇳물을 만드는 기술이다.
가루 상태의 원료는 용광로의 초강력 열풍에 통풍구로 날아가 버리거나, 서로 촘촘히 눌어붙어 연소율을 현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철광석 가루를 뭉쳐야 한다. 석탄도 사전에 코크스(cokes) 덩어리로 구워주는 공정이 필수적이다(각각 소결 공정과 코크스 공정).
그러나 파이넥스는 이 두가지 공정(그림)이 모두 필요없다. '유동환원로'라는 신개념 설비를 통해 철광석을 곧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 석탄도 따로 가공할 필요가 없다. 100년 용광로 공법의 패러다임에 폐막을 선언한 것이다.
◇ '1석3조(一石三鳥)' 누린다
"시설투자·원료비 절감에 환경까지…"
파이넥스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이점은 상당하다. ▲두개의 대규모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 ▲값싼(잘 뭉쳐지지 않는) 원료를 사용해 제조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환경오염 물질도 혁신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동시에 황산화물(SOx)과 질산화물(NOx)의 배출량은 각각 3%와 1%밖에 안 된다. 비산먼지의 양도 28% 수준이다.
철강산업도 친환경산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대폭 앞당긴 것이다.
서울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파이넥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용광로 대비 9% 수준"이라면서 "오는 2013년부터 시작되는 교토의정서 제2차 공약기간(한국에도 이산화탄소 감축을 요구할 때)에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철강기술의 독립을 넘어서
포스코의 조업 역사는 40년이 채 안 된다. 100년 역사의 선진국들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핵심 기술도 모두 해외 연수를 통해 체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77년 자체 기술연구소 설립 30년 만에 '철강기술 독립'의 꿈을 완성하게 됐다. 기술의 단순 수입업체에서 선진 기술의 '리더'로 급부상한 것. 세계 4위 철강 생산업체를 넘어, 본격적인 선두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근 파이넥스 연구개발추진반장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철강 선진국에서도 못한 파이넥스의 개발에 당당히 성공했다"면서 "경쟁 우위를 결정짓는 전략적 핵심 기술로 활용해 나갈 방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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