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현재 예금보호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것만 11건에 이른다. 특히 올해 3월 미국의 16위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고 당시 미국 정부가 보호한도와 관계없이 예금 전액을 보증해주겠다고 하면서 국내 예금자보호한도 재검토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아직 발의된 법안은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금융당국)는 오는 8월말 국회에 정부 입장을 제출할 예정이라 이 이후부터 본격적인 국회 논의가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구용역(TF) 결과를 기초로 정부 입장을 정리 중”이라며 “예보제도개선안에는 보호한도, 예보료율, 보험기금 규모 등이 종합적으로 포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지난해 3월부터 예금보호 제도 전반의 개선안을 내놓기 위해 민관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 TF를 운영 중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연금저축과 사고보험금,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에 대해 별도 보호한도 적용을 추진하면서 일각에서는 예금보호한도 상향이 단기간에 이뤄지지 쉽지 않을 것에 대비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전요섭 금융위 구조개선정책관은 하지만 “예금보호한도 상향 논의와 연금저축 등에 별도 보호한도를 적용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면서 “하반기에 예금보호한도 상향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금보호한도 상향 이슈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측면이 있어 단순하지는 않다. 가령 많은 개정안에 포함된 것처럼 1억원으로 예금보험 한도를 올리면 예금을 넣고자하는 수신고객 입장에서는 금융기관이 파산하더라도 보호받는 금액이 올라가 좋다. 반면 그만큼의 대가로 보험료(예금보험료)가 올라가야 하는데, 보험료를 내는 금융기관은 부담스러워한다. 보험료 인상이 대출금리 상승이나 예금금리 인하 등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른다.
물론 금리 전가는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와 판매자(금융기관)간 교섭력 차이가 있을 때 나타난다. 시중 유동성 상황도 영향을 미친다. 저금리 상황처럼 대출 문턱이 높지 않은 시기에는 돈을 빌리는 차주 우위의 시장이 형성돼 소비자에게 금리 전가가 쉽지 않다.
업권간은 물론 업권내 대형과 중소형 금융기관 입장도 다르다. 1금융권인 은행은 신용도가 가장 높아 특별히 더 보호받을 필요가 없는데, 일률적으로 예금보호한도가 늘어나면 보험료만 더 내고 저축은행으로 자금쏠림이 일어날까 걱정이다. 저축은행 업권도 동질적이지 않다. 중소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대형저축은행에만 자금이 쏠리고 우리는 보험료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권별로 예금보호 한도를 차등화하거나 1억원까지도 상향하더라도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금보호한도를 차등화하면 업권별 머니무브가 심화될 우려도 있다. 금융당국 내에는 아예 현재 보호수준으로도 충분하는 입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오래된 이슈지만, 그만큼 신속하게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