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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쉽게 상하는 것이었다. 유목 생활을 하는 터에 보관하는 것도 만만찮게 까다로웠다. 오래 두려고 저장해서 먹으려고 발효를 시작한 것이지 술을 담그려고 아이락을 만든 게 아닌 측면이 있다.
사실 유목 생활을 하는 몽골인에게 곡물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술의 주원료가 곡물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술은 몽골인에게 사치품에 가까웠을 수 있다. 칸의 몽골제국 당시 아이락이 귀족 등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는 데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남녀노소가 아이락을 즐길 만큼 보편화했다. 숙성한 지 얼마 되지 않으면 술이라기보다 요쿠르트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한다. 집(게르)을 찾은 손님을 접대하는 용도로 내어주기도 한다. 다만 말 말고도 양이나 염소, 젖소 젖으로도 만드는 것도 충분해서 마유주라는 명명은 모든 재료를 아울러 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아이락은 몽골의 정체성과도 닿아 있다. 현지인들은 매해 새해 아이락을 마시면서 과거를 거슬러간다고 한다. 칸의 몽골 제국이 영화롭게 번창하는 데에 밑거름이 된 게 말이라는 점에서, 말의 젖을 소비하면서 선조를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