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폐지된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를 다시금 공론장으로 올려놓았다. 피해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민단체가 김 전 대표를 경찰에 강제추행으로 고발하면서다.
지난 25일 정의당은 김 전 대표가 같은 당인 장 의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러 대표직을 사퇴했다고 밝혔다. 주요 정당에서 당 대표가 성비위 문제로 사퇴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사건이 정리되는 양상과 속도도 전례 없이 빨랐다.
김 전 대표는 인정했고 장 의원에게 사과했으며 정의당으로부터 당적을 박탈당했다. 장 의원도 “이 문제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렇게 정치라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건 경위가 밝혀지지 않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또한 비교적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김종철 성추행’ 사건은 정리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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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고죄’ 논란…“피해자가 원치 않아” vs “법에 따라 정의구현”
하지만 사건은 지난 26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홍정식 활빈단 대표는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김 전 대표를 강제추행 등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경찰은 관련 사안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해당 고발 건은 서울경찰청으로 넘겨졌다. 홍 대표는 “오는 2월 1일 고발인 조사를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고발 소식을 접한 장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SNS에 “피해 당사자로서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회복하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저의 의사와 무관하게 저를 끝없이 피해 사건으로 옭아넣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일갈했다.
이에 대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7일 성범죄 친고죄 폐지를 앞장섰던 정의당에 “성범죄를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에 섰던 정의당의 입장과 모순된다”며 “친고죄 부활을 원하는 것인지 명확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이어 하 의원은 “친고죄를 부활하는 법안부터 발의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홍 대표 역시 “법에 따라 가해자를 고발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며 “장 의원이 나에게 경솔하다고 했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인을 성추행으로 고발한 게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갑론을박은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논란으로 번졌다. 일각에서는 제3자가 피해자를 대신해 고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면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가해자에 대한 고소 여부를 직접 결정함으로써 피해자의 사생활과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친고죄는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지난 2013년 6월 피해자에게 고소의 부담을 떠넘기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사례가 이어지는 등 폐해가 드러나면서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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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피해자 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전문가들은 친고죄 폐지의 근본 취지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라는 점 고려할 때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친고죄 논란’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친고죄는 성범죄 피해자가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선희 변호사는 “피해자가 자유로운 의사 선택으로 가해자에 책임을 묻는 방식에 대해 법률적 제한 없이 선택지를 넓히고 피해자를 배려한다는 취지가 ‘친고죄 폐지’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 변호사는 “피해자의 선택에 반하여 제3자가 고발하고 수사 절차에 협조하라고 강요해선 안 되고, 이는 친고죄를 폐지한 취지와도 맞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서혜진 변호사는 “피해자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존중해야 한다”며 “‘피해자면 고소를 해야 하고 가해자는 처벌을 받아야 해’라고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 변호사는 “‘김종철 사건’의 중요한 쟁점은 피해자의 의사가 반영됐는지의 여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