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life] 혼인계약, 법과 관습 외에 부부의 구체적 합의로 정해야

이승현 기자I 2019.02.09 09:11:15

민법 강행규정 위반 아니면 부부 합의로 혼인계약 규정 가능
재산분할·동거장소·양가 부모 생활비 등 미리 정해두면 유익



[엄경천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 설 연휴가 끝난 첫날, 점심식사를 하러 들른 단골식당의 옆 자리에선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으면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접하게 됐는데 인척간 호칭에 관한 문제와 시댁에 먼저 가는 문제, 회사가 경조사와 관련한 복지에서 외가를 차별한다는 게 주된 대화주제였다.

아파트를 사고 팔 때에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한다. 아주 흔한 계약이라는 의미에서 ‘전형(典型)계약’이라고 한다.

매매에 관해선 ‘민법’ 채권편에서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모든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계약을 할 때는 대부분 계약서를 작성한다. 전형적인 계약서가 작성되기도 하지만 특약사항이 추가되기도 한다. 큰 빌딩을 사고 팔 때는 두꺼운 계약서가 작성되기도 한다.

계약은 재산과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신분과 관련해서도 이뤄진다. 대표적인 신분 관련 계약이 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혼인은 사회질서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보니 모든 계약의 내용을 혼인 당사자가 임의로(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회질서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민법에서 정해 놓고 그것과 다른 합의를 할 수 없도록 강제한다. 이런 규정을 ‘강행규정’(强行規定)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혼인의 기간이나 조건을 정하는 것(혼인기간을 5년으로 하는 것·자녀가 태어나면 혼인을 해소한다는 것 등)은 효력이 없다. 즉 기한이나 조건이 없는 혼인으로 본다. 혼인은 하되 배우자 이외 다른 남편이나 아내를 두기로 한다는 합의도 효력이 없다. 다만 민법은 배우자 있는 자가 다시 혼인한 중혼에 대해선 무효가 아니라 후혼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혼인은 하되 부부가 서로 부양을 하지 않기로 한다는 합의도 효력이 없다. 이런 합의를 해도 부부는 서로 부양 의무가 발생한다.

혼인과 관련해 당사자가 합의를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자녀의 성과 본을 아버지를 따를 것인지 어머니를 따를 것인지 정하는 것이다.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한다는 합의가 혼인신고서에 기재되면 자녀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된다. 이런 합의가 없으면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자녀 중 아들(또는 딸, 첫째)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딸(또는 아들, 둘째)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합의할 수는 없다.

둘째 부부재산계약(부부재산약정·약정재산제)이다. 혼인 중 재산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혼인신고 전에 미리 정할 수 있다.

이 같은 합의를 한 후 혼인신고 전에 등기소에서 등기까지 마치면 부부 이외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즉 부부재산계약에서 정한 것과 같은 효력을 제 3자에게 주장할 수 있다. 예컨대 주거용 주택(부부가 함께 거주하고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마친 곳 등으로 합의 할 수 있겠다)은 부부 공동재산으로 하고, 부부 공동재산을 처분할 때에는 부부 공동명의로 한다거나 상대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등 내용으로 합의할 수 있다.

이 같은 부부재산계약이 없으면 민법에서 규정한 부부별산제나 법정재산제에 따라 부부의 재산관계가 규율된다. 다만 대법원 판례는 이혼할 때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한다는 합의(약정)는 효력이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부부재산계약으로 재산분할에 관하여 합의를 한 게 전혀 효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재산은 부부 일방의 특유재산이고, 그 특유재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부부가 혼인 중 형성한 재산은 부부 공동재산으로 이혼시 재산분할 대상으로 한다는 등의 합의는 구체적 내용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가 효력을 가질 수도 있다.

대법원 판례는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으로 비로소 발생하고 재산분할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는 건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혼 시 재산분할에 관한 합의, 특히 재산분할 대상에 관한 합의가 구체적이고 남녀평등 원칙과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아 그 합의가 100% 효력을 갖지는 못해도 사실상 70~80% 효력을 가질 수 있다면 재산분할과 관련된 합의를 부부재산약정을 할 때 구체적으로 해 두는 게 중요할 것이다.

셋째 자녀의 성과 본 및 부부재산과 관련이 없는 혼인계약 내용에 대한 합의다. 민법에서 당사자가 합의로 정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강행규정에 위반되지 않으면 당사자가 자유로이 합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부부의 동거장소는 어떻게 정할지, 각자의 부모님께 생활비(부양료)나 용돈을 어떻게 드릴 것인지, 명절에 홀수 해(또는 짝수 해)는 남편의 부모님 댁을 먼저 방문하고 짝수 해(또는 홀수 해)는 아내의 부모님 댁을 먼저 방문하되 필요한 경우 미리 부부가 협의해 변경할 수 있다 등은 부부가 미리 정해 놓으면 유익한 합의가 될 것이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부가 정하는 혼인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민법의 강행규정에 위반되지 않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지 않는다면 효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엄경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4기 △한국가족법학회 감사 △한국가족법연구소 대표 △대한변호사협회 전문분야등록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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