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새 폭우가 쏟아지고 개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요즘처럼 궂은 날씨에 보기 좋은 애니메이션 ‘폭풍우 치는 밤에’를 소개한다.
‘폭풍우 치는 밤에’는 사회적으론 허용하지 않는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의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원작 동화인 ‘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일본의 해리포터라 불리며 아동문화계의 걸작이자 기념비적 베스트셀러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서는 '주군의 태양'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져 지난 2014년 재개봉했다. 이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박평식 씨네21 평론가도 6점이나 부여하며 “어른들도 배워 마땅한 화합의 미덕”이라고 평했다.
남녀갈등·노사갈등·세대갈등 등 폭풍우 치는 대한민국에 ‘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이해와 공생이란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 ‘메이’가 폭풍우 치는 밤 늑대에게 어머니를 잃으며 시작한다. 어미를 잃은 염소는 친구·친척 등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란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폭풍우가 한 번 더 찾아온다. 메이는 비바람과 천둥·번개를 피해 허름한 오두막집에 숨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두막집에 늑대 ‘가부’가 들어온다. 캄캄한 암흑은 ‘종’이란 선입관을 지워준다.
어둠 속에서 둘은 ‘취향·성격·고향·집’ 등 많은 얘기를 나누며 깨닫게 된다.
“우리 둘은 잘 맞는군요”“정말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걸랑~”둘은 천둥·번개에 두려움을 떨던 것도 잊은 채 ‘폭풍우 치는 밤에’라는 암호명을 짓고 다음 만남을 약속한다.
폭풍우란 시련이 올 때마다 메이가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공격’이 아닌 ‘돌봄과 대화’다. 특정 집단에 혐오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공동노력이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늑대와 염소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조금 놀랄 뿐 도망가지도 잡아먹지도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도시락을 먹으러 소풍을 간다.
“너가 날 잡아먹을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잡아먹었을 거야”“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우정이걸랑~”서로 다른 것은 ‘종’뿐이란 것을 인정했다. 둘의 우정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서로의 무리에서 비밀이었던 둘의 관계도 점차 들키게 된다. 종족들 사이에서는 이 관계를 이해할 수도 허용할 수도 없다. 다른 염소와 늑대들은 이간질을 시작한다.
“걔는 너를 이용하려고 할 뿐이야. 걔네 비밀을 캐어오면 널 용서해줄게”무리의 명령으로 친구를 배신해야 하는 가부와 메이. 둘이 만나는 날 또다시 폭풍우가 몰려온다. 하지만 순수했던 둘은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가부 얼굴을 보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나도걸랑~ 역시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걸랑~”‘종족’이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둘은 강물로 몸을 던진다. 이에 늑대 무리는 “우리와 다른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둘을 쫓는다.
가부와 메이는 늑대들을 피해 아무도 가보지 못한 큰 산을 넘으려고 한다.
“저 산 건너편에는 늑대와 염소가 사이좋게 지내는 전설의 숲이 있을 거야” 막연해 보일 수 있는 희망에 한 걸음씩 나아간다.
누군가 이상향으로 나아갈 때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은 “그런다고 뭐가 바뀔 것 같냐”며 “살던 대로 살아”라고 한다. ‘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 세상 속에선 서로 다치게 할 뿐이란 것을 깨닫게 한다.
거친 눈보라와 늑대들을 피하며 높은 산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식량은 고갈됐고 추격은 턱밑까지 왔다.
“가부 나를 먹고 너라도 이 산을 넘어줘”메이는 희생을 선택하지만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가부는 그럴 수 없다. 오히려 밖에 나가 풀을 찾으며 “메이가 조금이라도 힘을 내야 할 텐데”라고 말한다.
메이의 식량을 찾던 중 산턱 아래에 있는 늑대 무리를 발견한다. 이대로라면 메이를 찾아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겁쟁이 가부는 그들에게 매섭게 달려든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눈사태가 발생한다.
서로 위해 희생을 택한 둘. 이해와 공생에는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노력의 끝에 메이와 가부는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전설의 숲’은 존재할까.
그 모든 답은 애니메이션 ‘폭풍우 치는 밤에’에 있다. 이기주의와 사회적 편견에 물든 대한민국에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울림은 묵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