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콘서트 티켓 500만원까지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EXO)' 6년 차 팬인 유은수(24·가명)씨는 얼마 전(6월 12일 20시) 엑소 콘서트 티켓팅을 하러 근처 PC방에 갔다. 유씨처럼 티켓팅을 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세훈이(엑소 멤버 오세훈)의 실물을 가까이서 '영접'하려면 스탠딩석을 꼭 잡아야 했다. 55,56,57,58,59,땡! 서버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정각을 알리자마자 예매 버튼을 눌렀지만 원하는 좌석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채간 뒤였다. 유씨는 취소표가 풀리는 기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해 결국 티켓 양도 사이트에 들어갔다. 원하는 자리의 티켓 가격은 최소 40만원 이상이었다.
대학생 김수현(24·가명)씨는 엑소 콘서트 티켓팅이 있던 6월 12일 피시방을 찾았다. 혼자서는 실패할 수도 있으니 친구도 데려갔다. 티켓팅 성공 후 곧바로 온라인 티켓거래 사이트 티켓베이를 통해 티켓을 각각 45만원, 35만원에 판매 등록했다. 지난 4월에는 워너원 콘서트 티켓을 80만원에 팔았다. 단 두 번의 티켓팅만으로 160만원을 번 것이다. 남들이 최저시급을 받으며 한 달 내내 알바만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아이돌 팬들은 김씨 같은 이들을 '플미충'이라 부른다. 프리미엄(웃돈)을 붙여서 티켓을 파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는 의미에서 벌레 '충'자를 붙인 것이다. 이들은 인터파크티켓 등 예매사이트에서 무통장입금으로 티켓을 예매한 뒤 티켓베이에 프리미엄을 붙인 가격으로 표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다. 표를 산다는 사람이 있어 거래가 차익(프리미엄가-티켓정상가)을 얻는다. 구매자가 돈을 입금하면 티켓베이가 가지고 있다가 구매자가 티켓을 직접 받고 나면 판매자에게 수수료 10%를 뗀 티켓 값을 보내주는 구조다.
티켓 하나당 30만~40만원에 판매한 김씨는 "나 정도면 약과"라 말했다. 엑소, 방탄소년단, 워너원 등 최정상 인기 그룹의 경우에 명당이라 불리는 자리들은 수 백만원대까지도 판매되고 있다. 지난 2일 오픈한 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을 며칠 지난 뒤 티켓베이에서 검색해보니 최고가는 500만원에 이르렀다. 130만원 이상 티켓만 총 100장이 넘게 판매 등록이 돼 있었다.
- 치솟는 티켓가격은 누구의 탓일까?…티켓 양도 사이트 책임도
암표 문제를 둘러싸고 티켓 양도 사이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양도 사이트에서 판매 가격의 상한가를 정해 놓지 않아 표 값이 천정부지로 뛴다는 주장이다. 업체가 '플미충'들을 부추겨 프리미엄이 붙은 티켓 판매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존에 트위터 등 SNS상에서 거래하던 이들도 업체로 옮겨가는 추세다. 수수료가 떼이는 대신 안전 거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양도 사이트의 본 목적은 급한 사정으로 표를 사용하지 못하는 팬과 티켓을 못 구한 팬이 안전하게 표를 거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게다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시장 특성 상 2차 티켓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사실 프리미엄을 붙여 티켓 원가보다 비싸게 양도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업체도 암표상들의 판매 사실을 알고 있지만 불법이 아니라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팬심 이용한 이기적인 행위"
양도 사이트나 트위터는 수단일 뿐, 팬심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플미충들이 가장 문제라는 주장이다. 보통 인기 아이돌 그룹 콘서트는 팬클럽 선예매 기간이 있다. 웬만한 팬심 없이는 팬클럽 회원이 되기 힘들다. 신청 기한도 지켜야 하고 연회비 형식으로 돈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1년에 한 두 번 있는 티켓팅을 위해서 이 까다로운 과정을 모두 감내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플미충들이다. 물론 매크로를 이용하는 전문 암표상들도 있지만 팬들이 체감하기에는 개인 플미충들의 위력도 만만찮다. 유씨는 "지금 BTS, 엑소, 워너원 이렇게 세 그룹 콘서트에 암표상이 가장 많고 가격도 높은 편"이라며 "팬클럽에서 팬클럽으로 옮겨 다니며 티켓팅 기간만 노리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팬들은 분통이 터진다. 진짜 팬도 아니면서 팬들의 간절한 진심을 이용해 돈을 버는 플미충들이 야속하다. 워너원의 팬인 박승희(23·가명)씨는 "어느 정도 웃돈 얹어 파는 건 이해하지만 원래 가격의 3배, 4배가 기본인 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특히 인기 그룹 엑소(EXO)의 팬들은 티켓팅 기간마다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따로 팬클럽 선 예매 기간이 없어 타 팬들, 일반인들까지 티켓팅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선 예매 기간이 따로 있어도 플미충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데, 없으니 오죽하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티켓을 총 80만원에 판매한 김수현씨도 엑소 멤버가 몇 명인지도 모를 만큼 관심이 없었다.
-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암표 거래를 규제할 방법은 없을까. 현행법상 현장판매에 한해서만 경범죄로 간주해 처벌하고 있다. 다시 말해 판매장 근처에서 이뤄지는 암표매매만 불법이란 것이다. 이는 대부분 암표가 온라인 사이트와 각종 SNS를 통해 판매되는 실정과는 괴리가 있다.
암표판매를 규제하고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지난해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구입한 티켓 판매를 규제하자는 법안도 지난 2월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사업자가 경제적인 피해를 입지 않거나 인터넷 사이트의 안정성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아닌 경우 매크로를 사용한 해당 행위를 처벌하기도 힘들다.
그마저도 매크로를 쓰는 암표상이 아닌 대다수 플미충은 더더욱 잡아낼 방법이 없다. 양도 거래 사이트에서 구입 가격보다 높게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닌데다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개인 정보를 밝힐 필요도 없다. 또 트위터 등에서 이뤄지는 티켓 거래를 단속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돌 팬이 티켓 판매자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 신고한 사례가 있지만 해당 판매자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요즘은 콘서트장에서 티켓 검사 꼼꼼히 해서 암표 잘 없다던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콘서트장 입장 시 티켓 검사를 강화한 건 사실이다. 공연장 근처에서 현장거래를 하다 적발돼 쫓겨난 사례는 종종 있다. 그러나 티켓 예매 후 수령 기간 전까지 받는 사람과 주소를 변경하기만 하면 양도받은 사람의 티켓이 되기 때문에 공연장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프리미엄이 붙은 티켓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원래 티켓 가격의 3~4배를 주고서라도 구입하려는 팬들이 많기 때문에 플미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보고 싶은 간절한 팬심은 나도 잘 알아. '오빠들'이 인기가 있는 한 플미충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