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찍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에 부합하는 수준이지만 정책 당국자의 표정은 밝지 않다. 실제 가계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빠른 속도로 얼어붙는 상황에서 국제유가가 오르고 달걀 배추 등 일부 농축수산물 가격이 뛰며 물가를 끌어올린 탓이다.
일각에서는 체감 경기상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기 시작했다. 경제가 좋아져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5일 현대경제연구원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높아지는 한국 경제’ 보고서를 보면 수요 측의 물가 상승 압력은 크지 않다.
2014년 하반기 이후 디플레이션 갭(실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에 못미치는 상태)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만큼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부진에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축소하며 통화승수마저 떨어졌다.
이에 비해 공급 측에서는 물가를 올릴 만한 요인이 많다. 일단 원유를 포함해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다. 유가만 보더라도 지난해 초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50달러 중반대로 두 배가량 상승했다. 수입 가운데 원자재 비중이 60%를 넘는 우리나라로선 원자재 가격에 따른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턴 농축수산물 가격 또한 급등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으로 달걀 값이 올랐고 폭염 등으로 작황이 부진했던 농산물 가격도 상승했다. 여기에 수산물 가격도 꾸준히 오르며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8.5%에 달했다.
대외적인 요인도 물가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9월 1100원을 밑돌았지만 점차 오르며 지난해 말 1200원을 뚫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자재 등을 수입할 때 수입기업이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수입품 관련 물가 상승으로 연걸된다.
주요국 물가가 오름세라는 점 역시 걱정거리다. 다른 나라 물가가 오르면 교역을 통해 국내 물가도 상승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의 경우 임금 상승 등에 힘입어 2.0%에 가까워졌고 중국도 지난해 말 2.1%까지 상승 폭이 확대됐다. 유로존과 일본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에서 벗어나 오름 폭을 넓히고 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해외 물가도 상승 폭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공급과 해외 측 요인이 앞으로의 물가 상승을 이끌 것”이라고 봤다. 저성장·고물가가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단 얘기다.
김 연구위원은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은 내수 심리를 위축시켜 실물부문의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며 “총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재정정책을 쓰고 물가관리 체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