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부루마블..보드게임 불모지서 황금을 캐다

이지현 기자I 2014.09.03 08:31:58

이상배 씨앗사 대표 1982년 첫 출시
아이 눈으로 세상을 읽기 성공 요인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처음에 5000개를 만들어 대형 완구 도매상에 2000개를 뿌렸는데 3개월만에 100% 반품이 들어온 거예요. 어떻게 하는 게임인지를 모르니 하나도 팔리지 않았던 거죠. 처음에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1982년 5월 5일 한국에 처음 등장한 보드게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이상배(63) 씨앗사 대표는 다신 안 하고 싶은 고생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인생은 올해 33살이 된 부루마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미술학도 게임에 빠지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아랍에미리트(UAE)에 건너가 신축 호텔 실내디자인을 담당했다. 무료한 저녁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부동산을 구입하고 통행료를 받는 미국의 보드게임 ‘모노폴리’는 최고의 벗이었다.

“한국에 들어올 때 이거 하나만 챙겨왔어요. 그땐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보다는 가지고 놀려고 했는데 국내에서 시작한 사업이 잘되지 않으며 직원들과 게임을 하다가 이걸로 한번 해보자고 했죠”

이상백 씨앗사 대표
미국 달탐사 우주선 아폴로 17호에서 찍은 사진인 푸른구슬(블루마블) 지구에서 모티브를 얻어 아이들의 발음 그대로 ‘부루마블’이라고 작명했다. 디자인은 홍대 미대 선배였던 나성남 호서대학장이 맡고 게임 원리는 당시 서울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또 다른 선배가 맡았다. 흰 종이에 자로 선을 긋고 주변 아이들과 게임을 하면서 재미있어하는 부분은 추가하고 지루해하는 부분은 빼가며 8개월을 보냈다.

“어린이날에 맞춰 시장에 내놨는데 파는 사람도 이런 건 안 팔아봤다며 쌓아두더라고요. 3개월만에 모두 반품되는데 망했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게임 설계 마케팅..아이 눈높이 맞추기

부루마블은 아이들을 위한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부루마블이라는 이름부터 말판에 있는 국가·도시명까지 일반 국어 표기와 차이가 나는 것도 이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여러번 읽게 해 아이들이 읽는 그대로를 표기했어요. 아이들이 읽기 쉬워야 외우기도 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말판에 활용된 5가지 색에도 의미가 있다. 말판이 파랑이나 빨강이었다면 눈이 쉬 피로해져 오랜시간 게임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녹색을 바탕으로 활용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핑크색과 녹색, 갈색 등은 국가들을 표시한 것이다. 여기에 국가 배열을 세계 GNP(국민 총생산) 순서대로해 놀면서 그 나라에 대해 쉽게 익힐 수 있게 한 것이 부루마블의 매력이다.

부루마블 게임의 말판
여러 의미를 담았지만, 시장은 조용했다. 이를 알리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했다. 주변에선 광고를 권유했다. 어떻게 하는 게임인지를 알려야 팔리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만화 ‘꼭지’의 이향원 화백을 찾아가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게임 방법을 만화로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만화를 당시 대표 어린이 잡지였던 소년 경향, 새소년, 어깨 동무 등에 실었다. 또 이를 광고지로 만들어 서울 압구정, 여의도, 동부이촌동 놀이터 학교 등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뿌렸다.

“발바닥에 땀 나게 다녔더니 팔리지도 않았던 게 하루에 10상자씩 팔리더라고요.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에서도 물건을 달라고 성화였죠.” 반품했던 도매상들도 물건을 달라고 했지만, 그는 소매상 중심의 현금거래로 시장을 넓혔다. “나중에 도매상 총판 회장이 찾아와 첫 거래의 반품을 사과하더라고요. 젊은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되는 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다면서요.”

이 사건은 그에게 큰 교훈이 됐다. 핸드폰 게임이 한창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 청년 프로그래머들이 그를 찾아와 라이선스 이야기를 꺼낼 때 그는 흔쾌히 이들과 계약했다. 이후 CJ(001040)가 찾아와 라이선스 얘기를 꺼낼 때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만약 CJ에 줬다면 로얄티로만 수십억을 벌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창업했던 그때가 떠올라 청년들에게 줬지요. 이후 CJ가 부루마블과 비슷한 ‘모두의 마블’을 내더라고요. 대기업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어 소송을 준비하는데 변호사가 대기업과 싸우면 시간만 지체되다 끝날거라고 해서 결국 접었죠.”

현재 그 청년 벤처기업은 여러번의 인수합병을 통해 오는 9월 스마트폰 게임으로 부루마블을 오픈 할 예정이다. CJ 모두의 마블과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의 원리..현금 가지고 있으면 진다

부루마블은 가장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에 대해 그는 게임의 원리를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지는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기본 원리를 게임에 적용해 자금을 투자하지 않으면 지고 마는 구조예요. 이런 원리 때문에 현대차(005380) SK(003600) 연수원에는 직원들이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부루마블 게임이 놓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속적인 투자 없이는 아무리 대자본가여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현실을 게임판 위에 담은 것이다. 여기에 중간마다 만나게 되는 황금열쇠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았다. “황금열쇠 카드 30장에는 행운과 불행을 함께 담았어요. 알 수 없는 우리 인생과 비슷하지 않나요.”

부루마블은 올해로 33년째가 됐다. 요즘도 연간 30만개씩 팔려나가며 연간 매출액 25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에겐 나라 이름을 외우며 숫자를 익힐 수 있는 게임이고 어른들에게 추억의 게임으로 자리 잡으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형 완구총판의 부도로 받아둔 어음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큰 업체가 쓰러지면 우리 같은 중소업체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중간중간 벌어둔 걸 모두 까먹으면서 느낀 건 절대로 어음을 받으면 안 되겠구나였죠. 지금은 아무리 큰 대형마트라도 꼭 현금 거래만 합니다.”

지난 2002년에는 상표권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번 상표권 등록을 하면 평생 제꺼라고 생각했어요. 상표유효기간이 10년이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거든요. 부루마블 협력사 직원 중 한명이 자기 이름으로 부루마블에 대한 상표권을 등록하면서 부루마블이 다른 회사꺼로 넘어가고 말았죠.”

직접 만들었음에도 상표 무단 사용혐의로 고소당해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소송을 통해 부루마블의 상표권을 되찾은 그는 숨을 고르며 부루마블을 손보기 시작했다. “국가 배열을 새로운 GNP 순으로 바꾸고 홍콩 대신 베이징을 넣었어요. 하지만 이전 표현은 그대로 살리면서 하려고 해요. 부루마블 1세대의 추억을 지켜주고 싶거든요.”

그는 청년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젊을 때 어떤 일을 하건 ‘이게 아니면 죽는구나’라는 마음가짐으로 덤비면 성공률이 98%는 됩니다. 노력하는 만큼 틀림없이 성과가 있다는 걸 믿고 도전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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