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잇고, 있다

김가영 기자I 2025.04.08 06:00:00

-심사위원 리뷰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작곡가 시리즈 Ⅳ- 이상규''
이상규의 예술정신 담겨
핵심메시지 간결히 전달한 ''용비어천가'' 닮은 표현

[노은아 서울대 국악과 교수] 창작국악의 토대가 된 작곡가들의 작품을 살피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기획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작곡가 시리즈’가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작곡가 시리즈 Ⅳ-이상규’ 공연 사진(사진=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작곡가 시리즈 Ⅳ-이상규’ (3월 27~28일)는 작곡가이자 연주자, 교육자, 지휘자로 활약한 강해(腔海) 이상규(1944~2010)를 조명하는 공연으로, 그의 대표작 ‘16개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1971년), 해금협주곡 ‘수나뷔’(1982년), 대금협주곡 ‘대바람소리’(1978년), 피리협주곡 ‘자진한잎’(1972년)이 연주됐다.

작곡가 이상규는 1978년 대한민국작곡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대바람소리’를 비롯한 400여 곡의 작품을 남겼으며, KBS국악관현악단,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등의 지휘자로 국악관현악 발전에 기여했다.

다시 접한 명곡들, 전통음악을 기반한 그의 작품은 올곧은 예술 정신을 담겨 있는 듯하여 무언가에 그토록 목말랐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경험하게 했다. 전통 장단에서 비롯된 장중한 호흡과 길고 유려한 선율을 지휘자는 지휘봉 대신 집박을 치는 듯 음악을 이끌었으며,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들의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연주는 그의 작품을 한 편의 시(詩)로 느껴지게 만들어냈다.

‘작곡가 시리즈 Ⅳ-이상규’ 공연 사진(사진=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이번 공연은 특별히 정재국 명인 등 초연 당시 연주를 맡았던 연주자들이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으며, 이상규와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가족과 선후배, 친구, 제자들이 무대 위 영상으로 함께 해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틀 내내 국립국악원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그리운 마음을 함께 나누며 전통이 살이 숨 쉬는 그의 음악에 흠뻑 심취했다.

더불어 이번 공연에서는 이상규 작곡가의 장녀이자 작곡가·지휘자로 활동 중인 이경은이 위촉곡 ‘불멸의 밤’을 직접 지휘해 초연했다. 이경은은 “아버지는 ‘작품은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며, 그럼에도 전통은 지켜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며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현재 자신의 작품이 과연 어떠한지에 대해 묻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우리 음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우린 늘 자문하며, 때론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인지 이날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 로비는 유난히 오랫동안 뜨거웠다.

늦은 시각 집에 오는 길, 문득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제2장 시가(詩歌)가 떠올랐다. ‘용비어천가’는 세종 때 한글 창제 후 최초로 기록된 서사시로, 핵심적인 메시지를 간결히 전달하면서도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이상규 작곡가 작품의 표현방식과 닮아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어지지 않아, 냇물 되어 바다에 이른다.”

‘용비어천가’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 미래를 향한 비전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제시해 과거와 미래를 이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상규의 작품은 ‘뿌리 깊은 나무’로, ‘샘이 깊은 물’로 음악의 맥을 잇고, 세대를 이어 많은 꽃과 열매로 현재를 있게 한다.

그야 말로 “잇고, 있다.”

노은아 서울대 국악과 교수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