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리원자력발전소. 12일 이데일리가 찾은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은 국가중요시설로 청와대에 준하는 보안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부부처 관계자도, 청장도 예외 없이 번호표를 뽑은 뒤 신분증을 맡기고 지문등록을 하는 까다로운 출입 절차를 거쳐야 한다. 휴대폰 카메라엔 ‘촬영금지’ 스티커를 앞뒤로 붙여주는데, 원전 내부는 물론 입장 전 간판 사진 촬영조차 불가하다. 휴대폰과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모두 반납하고 문을 들어선 뒤에도 시설을 방문할 때마다 출입증과 지문 인증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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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부지에 들어서면 바닷가를 따라 원전을 감싸고 있는 해안방벽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지진해일을 막는 첫 번째 문지기다. 해수면으로부터 10m 높이로 세워진 방벽 한 편엔 거대한 차수문이 열려 있는데, 평소엔 출입문으로 사용하지만 지진경보가 울리면 문을 닫아 원전을 보호한다. 두께 1m에 무려 27t으로 매우 두껍고 무거운 탓에 완전히 닫히기까지 4분 30초가 소요된다.
혹시라도 해안방벽과 차수문이 지진해일을 막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곳은 ‘비상디젤발전기실’(EDG, Emergency Diesel Generators)이다. 원전이 정지해도 수조의 냉각기능은 유지돼야 하는데, 기존 사용하던 소외전원 공급이 중단되면 EDG에서 디젤 연료를 활용해 안전장치에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이자 세 번째 문지기는 바로 EDG를 둘러싼 약 4m 높이의 방어벽이다.
3중 방어벽은 모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3월 규모 9의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발전소 설계대로 안전하게 정지하면서 초동 대처에 성공했다. 그러나 직후 몰려온 지진해일로 원전 부지가 침수되면서 지하에 있던 EDG실이 물에 잠겼다. 비상 발전기마저 물에 잠겨 냉각수를 공급하지 못한 후쿠시마 원전은 연료가 손상되면서 결국 폭발했다. 고리원전의 EDG실이 지상에 위치한 이유도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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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발전소 주요건물 등에 6개의 지진감시용 계측기를 설치하고 원전의 지진을 감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지진계는 ‘찰리’라고 불리는 YE-3276C로, 격납건물 중심부에서 약 109m 떨어져 있는 지표면에 설치됐다. 지진을 감지하면 신호를 전송해 지진경보까지 이어지도록 돕는다. 고리원전뿐 아니라 월성, 한빛, 한울 등 국내 원전에서도 각 지진계를 설치해 활용하고 있다.
원안위는 기상청과 협력해 원전 지진계를 국가 지진관측망으로 편입시켜 국민을 위한 지진 분석도 실시할 전망이다. 기상청은 △월성·신월성, 고리·신고리 150개소 △한울·신한울 35개소 △한빛 35개소 등 총 220개소의 지진계를 활용해 2027년까지 국가지진관측망을 전국 총 851개소로 확충하겠단 계획이다. 지진을 감지하는 시간을 단축하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단 설명이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국가지진관측망을 확충해 지진 탐지시간이 2초 줄어들면 근거리 대피가 가능하고 인명피해를 80%까지 줄일 수 있다”며 “최근 동해 부근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데다 포항·경주 지진을 겪은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원안위 관계자 또한 “지진경보가 2~3초 늦은 사이 지진의 순간 강도가 높아지면 기기가 손상될 수 있다”며 “1초라도 빨리 제어해서 원전을 정지하는 게 발전소 안전에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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