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사람만 많지 지갑 안 열려"...추석연휴에도 명동상인 '한숨'

박성의 기자I 2017.10.03 10:30:00

2일 추석연휴에 명동 거리 인파로 붐벼
"평일 월요일이라면 기대하기 어려운 인파"
사드 여파로 줄어든 유커 빈자리 체감 어려워
객단가 큰 중국인 감소에 상인들 근심 여전

[이데일리 박성의 기자] 오후 6시. 명동 상인들에게 이 시간은 ‘골든타임’이다. 숙소에 머물던 관광객들이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인근 음식점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명동 거리를 배경삼아 ‘인증샷’을 남기려는 관광객들은 거리 초입을 메운다. 로드숍을 찾는 한국인들도 인파에 섞여 명동 거리를 썰물처럼 채운다.

추석 ‘황금연휴’가 시작된 2일 오후 6시 명동 유네스코 거리 입구. 예상대로 거리는 붐볐다. 히잡을 쓴 말레이시아 여성 관광객 다섯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옆에는 허리까지 오는 분홍색 캐리어를 끄는 일본 관광객 한 명이 구글 통역기를 써가며 환전소 위치를 묻고 있었다. 5분만 서 있어도 귀가 먹먹할 만큼, 거리엔 생기가 돌았다.

◇ 인산인해 이룬 명동 거리

2일 오후 명동 유네스코 거리. 추석 연휴를 맞아 거리에 나온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명동은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다. 각종 패션·액세서리를 파는 로드숍부터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매장, 유명 음식점이 몰려 있어서다. 명동 거리를 채운 관광객의 밀도가 한국 관광산업의 ‘신호등’이란 말까지 나온다.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된 2일 명동 거리의 분위기는 ‘파란불’이었다. 사람은 많았고 거리는 시끄러웠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과 한국인들이 명동 거리를 오갔다. 평일 월요일이라면 기대하기 어려웠을 인파가 이날 명동 거리에 모였다.

한 화장품 매장에서 모객을 하고 있던 점원 김희원(23·가명) 씨는 “평일 금요일이나 토요일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연휴가 길다보니 한국인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준비한 사은품도 개시 30분 만에 반절 가까이 나눠줬다”고 전했다.

2일 라인스토어 명좀점 매장. 캐릭터인형과 사진을 찍으려는 해외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인근 라인스토어와 에잇세컨즈 매장은 유명 캐릭터 인형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인증샷을 찍고 나와 거리를 구경하던 일본인 관광객 3명은 인근 매장에서 유명 아이돌가수 ‘워너원’의 노래가 흐르자 유창하게 ‘나야 나’라는 가사를 합창하기도 했다.

연휴를 맞아 가족과 명동을 찾은 최황만(37·남) 씨는 “직장이 근처라 회식할 때 명동 거리를 자주 찾는데, 오늘처럼 사람이 많은 건 오랜만에 본다”며 “외국인도 많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복잡하긴 한데, 그래도 사람냄새 나는 거 같아서 보기 좋다”고 말했다.

◇ 사드 여파에 “버는 돈 신통치 않아”

다만 일부 노점 상인들은 “(행인들의)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겉보기에는 상권에 파란불이 켜진 것 같지만, 실상은 ‘빨간불’이란 얘기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여파로 줄어든 중국인 관광객의 공백을 일본, 동남아 관광객 등이 메웠지만 매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명동 길거리에서 소시지 구이를 파는 박하민(가명) 씨는 “중국인들은 먹는 것에 있어 관대하다. 구매량도 굉장히 후해서 맛있다 싶으면 한 명이 다섯 개씩도 구매해 간다”며 “그러나 다른 나라 관광객들은 관심을 갖더라도 1개를 구매해 나눠먹는 경우가 많다. 결국 중국인 관광객 1명이 줄어들면 매출이 받는 타격은 그 수배는 된다”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에 거리에 나온 한국인 관광객이 늘었지만, 1인당 평균 구매액(객단가)은 미미할 것이란 회의론도 나왔다. 명동 한 액세서리숍 점원은 “한국 고객들은 보통 인근 영화관이나 맛집을 가는 등 특정 목적을 위해 거리를 걷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인 관광객이 매장을 채웠을 때와 한국 고객이 매장을 채웠을 때 매출차이는 거의 열 배 가까이 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요우커(중국인 단체관광객) 발이 끊긴 인근 환전소 앞도 한산했다. 평소 요우커로 붐비던 환전소에는 러시아, 동남아, 일본 등에서 온 관광객들만 눈에 띄었다. 추석 첫날 ‘대박’을 쳤냐는 물음에 환전소 주인 박함구(가명)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돈 바꿔 가는 거 보면 예전만 못하다”며 “작년 추석에 달러도 엔화도 위안화도 한 사람 당 50만원은 해갔다면, 오늘은 그 절반도 못 미친다고 보면 된다. 이러니 명동 상인들 장사라고 별 수 있겠나”라며 한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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