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무시무시한 인공지능 로봇의 세상이 머지않아 올 것만 같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30년뒤 작은 인공지능 칩 하나가 인간의 뇌보다 100배 똑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30년 뒤에나 있을 법한 얘기. 무시무시한 로봇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 지금 나와 있는 로봇은 귀여운 수준이다. 인간의 기준에서 봤을 때 예의도 없고 자기 말만 한다. 소음 등 외부 환경에도 취약하다.
세계최대 이동통신 박람회라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나온 휴머노이드들도 마찬가지였다. 2200개 업체가 참가하고 10만여명이 운집하는 곳이다보니 대화가 가능한 휴머노이드가 하나쯤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곳 바르셀로나에서만큼은 헛된 기대였다.
◇요모·MWC에서 만난 페퍼, 소통의 벽만 느끼다
MWC 개막 첫날 어린이들을 위한 ICT 전시회 ‘요모’(Youth Mobile)에서 처음 휴머노이드 ‘페퍼’를 맞닥뜨렸다. 귀여운 얼굴에 태블릿PC를 가슴에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
“와츄어 네임?”
콩글리쉬 느낌 잔뜩 벤 간단한 문장에 페퍼는 반응하지 않았다. 현지 안내 여성은 지켜만 볼 뿐이었다. 어설픈 영어로 사용법을 묻자 이 여성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답했다. 로봇과 소통에 실패하고 현지 여성과의 대화에도 실패했다.
다음날에도 로봇과의 소통에 도전했다. MWC 내 로봇 관련 기업들이 몰려 있다는 MWC 전시관 8홀에 갔다. 8홀 안에서 중국 로봇 업체 부스 앞에 앉은 로봇을 발견했다. 몸 길이 30cm 정도였다. 다시 물었다.
“와츄어 네임?”
로봇은 누워 있을 뿐 반응이 없었다. 곁에 있던 중국인 직원이 왔다. 그는 리모콘을 키고 조이스틱을 만졌다. 음악 소리가 나왔고 로봇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인간과 소통할 의지가 전혀 없는 ‘괘씸한’ 로봇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춤 밖에 없었다. 실망감이 컸다.
|
페퍼의 얼굴을 보고 물어봤다. “와츄어 네임?” 페퍼는 고개만 갸우뚱 거렸다. “하이”라고 하자 페퍼가 대답했다.
“파든?”
못알아 듣었다는 뜻이다. 주변 소음으로 페퍼가 고전하는 듯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페퍼가 엉뚱한 말을 쏟아냈다. 직원이 페퍼의 카메라 눈을 가렸다. 잠시 가만히 있던 페퍼는 태블릿PC에 소프트뱅크 로고를 띄웠다. 그러더니 “원더풀”이라며 영어를 지껄였다. 소프트뱅크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 것 같았다. 페퍼에 입력된 영업 정보였다.
혹시 일본어는 가능할까. “캔유 스피크 재패니스?”라고 물었다. 페퍼는 또 대답했다.
“파든?”
마음 속 눈물을 머금고 뒤로 돌아섰다. 로봇과의 소통에는 또 실패였다.
지나가다 부스 안내 휴머노이드도 만났다. 페퍼의 종류였다. ‘와츄어 네임’이라고 물었다. 가만히 쳐다보던 이 로봇은 태블릿PC에 사진을 찍자는 메시지를 띄웠다. ‘예스’를 누르자 포즈를 취하라는 음성이 로봇에서 나왔다. 두번 사진을 찍자 로봇은 이메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메일 입력은 태블릿PC 화면내 키보드를 눌러야 가능했다. 태블릿PC 화면에 뜬 키보드를 누르는 동안 페퍼는 여러 번 움직였다. 15개 남짓 알파벳과 숫자를 누르면서 수 차례 오타를 연발했다. 그래도 말로 명령하는 것보다 편했다.
◇아직은 먼 ‘대화형 로봇’
한국 전시관에도 로봇은 있었다. 개 모양을 한 로봇과 자판기 로봇이었다. SK텔레콤 부스 내에는 커피숍 자판기 로봇이 있었다. 스크린에는 여성의 얼굴이 나왔다.
“너 이름은 뭐니?”
로봇 스크린의 여성은 변화가 없었다. 쳐다만 볼 뿐이었다. 옆에 있던 안내 직원이 “이건 시나리오가 있다”고 말했다. 주문에 따라 메뉴를 얘기하고 거기에서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고르는 알고리즘이었다. 그나마 주변 소음으로 로봇은 인간의 말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
일전에도 시리와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엉뚱한 검색 결과에 결국 화를 냈다. ‘쌍욕’을 하자 “저한테 왜 이러시는거예요?”라며 시리는 억울해했다. 억울한 것만큼은 잘 표현했다.
30년 뒤는 인공 지능 로봇의 시대라고 했지만 이곳 MWC 현장에서 휴머노이드는 초보 수준이었다. 30년은 멀고도 아득했다. 로봇의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인공지능 시대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길 바랬다. 어느덧 MWC도 폐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