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Story]'호오이~호오이~ 숨비소리를 아시나요

김상윤 기자I 2015.12.25 12:00:57

제주해녀 희귀·독특한 문화적 가치 인정받아
올해 국가 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지정
내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기대

해녀들이 물질할 때 이용하는 붉은색 테왁과 망사리.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상군(上群)’의 테왁은 다른 해녀보다 훨씬 크다. 해녀들은 깊은 잠수 뒤에 잠시 테왁에 의지해 ‘숨비소리’를 내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호오이~호오이~’

제주도 해변가를 따라 가다보면 바다 저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고요히 들려온다. 돌고래가 우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람이 내는 소리다. 해녀(海女)들이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나는 숨소리다. 약 1~2분가량 잠수한 뒤 내뱉는 ‘숨비소리’는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들린다. 수압을 견뎌내느라 삭신은 고장 났지만, 살기 위해 내뱉어야 하는 해녀의 숨소리이기 때문이다. 자칫 물속 깊이 들어가 돌아올 때를 놓치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 속담도 이래서 나왔다. 15~20m 바닷속에 들어가 수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의 ‘물질 작업’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다.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포구에 위치한 해녀 학교 실습장. 오른쪽 원형의 인공체험장에서 훈련을 받은 뒤 왼쪽 자연체험장에서 실제로 전복과 소라를 잡는따. 오른쪽 위 구석에는 해녀들이 체온을 유지하거나 잡은 해산물을 구어먹는 불턱이 있다.


◇노약자 배려하고, 바다 보호하고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해녀 삶은 독특하다. 해녀 공동체는 배려와 질서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일례로 제주도의 각 어촌계에서는 ‘할망바당’이란 게 있다. 앞바다의 수심 얕은 곳은 힘없고 나이 든 해녀의 바다다. 힘 좋고 기술 좋은 ‘상군(上群)해녀’는 좀 더 멀리 깊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한다. 상군 해녀는 호흡이 더 길기 때문에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가 실한 전복, 소라를 캐올 수 있다. 상군 해녀들은 자신이 잡은 전복이나 소라를 나이 든 해녀에게 남모르게 망사리에 건네주기도 한다. ‘게석’이라는 그들 특유의 문화다.

생리하는 해녀는 알아서 물질에 나서지 않는다. 피 냄새를 맡고 상어떼가 몰려오면 해녀 모두가 위험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해녀들이 그날 채취한 해산물을 골라 나눠준다.

해녀는 수산물 채취를 통해 가정경제의 주체적 역할을 한 여성생태주의자(Eco-Feminist)라고 할 수 있다. 여성, 자연, 노약자, 생태계 등 해녀가 가진 가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하지만 해녀의 물질을 배우는 사람은 급격히 줄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현직 잠수어업인은 제주시 2485명, 서귀포시 1930명 등 총 4415명만 남아 있다. 1970년 1만 4143명에서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고령화됐다. 머지않아 해녀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해녀가 사라지면 해녀가 오랫동안 배우고 만들어온 물질 기술과 공동체 삶도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그냥 지우기엔 아까운 우리의 소중한 문화다.

◇해녀의 명맥을 잇자…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움직임

다행히 해녀의 명맥을 잇고, 전통성을 이어나기 위한 움직임이 부단하게 일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제주해녀를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지정했다. 전통적 채집 방식과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높이 평가한 결과다.국가 중요어업유산은 어업유산을 국가가 지정해 관리함으로써 어촌의 자원과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면서 어촌 활성화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만든 제도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

정부와 제주도는 해녀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은 제주해녀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등재 여부는 내년 하반기에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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