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가게 ③] 최성환의 술퍼맨

플레이DB 기자I 2015.02.25 07:57:09
[배우의 가게 ③] 최성환의 술퍼맨
상호명에서 오는 선입견이 있었다. 술퍼맨이라. 술을 퍼 마시는 남자가 매력적이기란 쉽지 않지 않은가. 먹고 마시는 시끄러운 호프집일 것 같았지만 맛 좋고 분위기 좋고 거기다 배우들의 단골집이라는 증언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야말로 '대학로 핫 플레이스'라는 말에 발걸음을 주저할 수는 없었다. 본디 술은 그 자체로 '퓨어'하게 영접하는 스타일이지만 술퍼맨은 기자를 '안주빨 세우는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야 말았다. 안주라 부르기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싱싱하고 맛깔스런 감탄의 맛들. 배우 최성환이 운영하는 술퍼맨의 음식들은 단언컨대 '리얼'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술퍼맨의 위치와 간판은 익숙했다. 취재차 자주 오갔던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위층이자 예쁜 팬시 상품들이 즐비해 딱히 살 것이 없을 때도 들리곤 했던 '십 곱하기 십' 매장 옆이기 때문이다. 상호명을 영문화한 간판이 자칫 '슈퍼맨'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빨간 간판 옆에 길게 걸린 현수막에 등장하는 해물모듬찜, 해물라면, 생합탕, 쭈꾸미볶음 등 해물을 주재료로 한 술퍼맨의 특화 메뉴가 일찌감치 주문 고민을 하게 만든다.

포장마차라 해서 정감 돋는 규모인 줄 알면 큰 오산. 약 150석 규모의 넓은 매장 한 쪽엔 공연 시파티, 쫑파티 장소로도 애용되는 단체석까지 마련되어 있다. "밝은 어둠의 분위기가 나길 바랐다."는 최성환의 주문에 맞춰 대학에서 영화미술을 전공한 최성환의 여동생과 지인이 직접 실내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레드 앤 옐로우'의 조화로운 사용을 바탕으로 벽면을 가득 채우는 '샤우팅 성환' 그림도 동생의 솜씨. 무대 구조물과 같은 느낌의 벽면과 천정에 달린 조명은 이 집 주인 및 단골들의 홈그라운드인 무대와 연관이 깊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 '주방장 추천 메뉴판'을 적극 활용할 것.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이날 우리들의 선택은 시원하고 뜨끈한 생합탕과 각종 해물이 뻘겋게 요동치는 해물볶음찜 되시겠다.

기자가 반해버렸고, 이 기사가 끝나는 내내 찬탄할 부분은 바로 '맛'임을 미리 고백한다. 최성환보다 먼저 우리를 반겨준 술퍼맨의 메인 쉐프이자 최성환의 어머니 신영순 여사님 솜씨다.
"내가 성환이 아빠랑 충남 서천에서 횟집을 10년 했어요. 그 때도 단골들이 많았지. 근데 아들이 이거 같이 해보자고 하니까 어떻게 해, 아들 말 들어야죠. 그래서 거기 정리하고 서울 올라온 거에요."


아들이 먹거나, 아들 친구가 먹거나, 내 자식 또래들이 먹거나, 또는 내 식구들 같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니 집에서 먹는 것처럼 요리한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본 음식 전 나온 반찬들만 먹어봐도 단번에 이해가 간다. 일반 주점에서는 쉽게 나오지 않는 된장양념 나물무침이나, 달고 짜지 않게 볶아진 오뎅, 시원하고 아삭한 김치와 개운한 콩나물국 등이 술퍼맨의 에피타이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드디어 나온 거대한 위용의 해물찜과 생합탕. 통오징어와 통게뿐 아니라 각종 해산물들이 아낌없이 들어가 얽히고 설켜있는 맛깔난 해물볶음찜은 남자 2인, 여자 3인이 달려들어야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우리 아들이 배우니까 걔들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알잖아요. 밥이라도 맛있고 든든히 먹으라는 거지."라는 어머니의 철학이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생합탕. 오로지 생합과 파, 고추만 넣고 끓인 이 국물을 한 수저 후루룩 넘기면 시원하고 매콤하며 개운한 끝 맛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라면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듯. 해물라면(라면스프가 들어가기 때문)을 제외한 술퍼맨의 모든 음식엔 일체의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모든 음식에서 느껴지는 개운하고 깔끔한 맛의 비결이다. 17년 자취생활로 얻은 아토피가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신 후 3개월 만에 나았다는 최성환의 생생 증언도 이어졌다.


대학로 CGV 근처에서 작게 시작한 술퍼맨이 지금의 자리로 옮긴지는 약 8개월. 최성환의 아버지가 매일 서천에서 보내주시는 싱싱한 해물과 어머니의 음식 솜씨, 단골 손님에서 같이 일하는 식구가 된 술퍼맨 직원들, 그리고 사장님이자 영업담당이자 서빙이자 카운터로 공연이 없는 틈틈이 가게 운영을 이끄는 최성환 등 환상 호흡조는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입소문을 만들어 내었다.
"매니저인 배우 (김)현중이도 빼놓을 수 없어요. 가게 계약하고 오픈할 때부터 계속 있었거든요. 저희가 안지 10년 됐는데 이제 저희 어머니 둘째 아들 되었어요. (웃음)"

대학로 한 가운데 이렇게 좋은 가게를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물음에 최성환의 대답이 못내 쓸쓸하다. "그만큼 배우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거죠. 주연 배우들의 몸값은 올라가는데 조연이나 앙상블들은 10년 전 출연료가 지금까지 그대로거든요."

롯데월드 페이스팀 소속으로 활동하다 스물 여덟 살에 정식 무대 데뷔를 한 최성환은 <영웅> <라카지> <맨오브라만차> <그날들>을 비롯해 최근 출연작인 <조로> 등 그간 많은 대형 무대를 탄탄한 기량과 열정으로 채워왔다. 오랫동안 배우 장으로서 여러 배우들을 이끌고 살피는 터라 현재 배우들이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들에 대해 더욱 할 말이 많은 그다.

"<영웅> 초연부터 <라카지>까지 (정)성화 형이랑 오래 작품을 하면서 형을 저의 멘토로 생각하고 있어요. 과거 힘들었던 과정을 어떻게 지내오셨는지 다 아니까 형 보면서 저도 버티고 있는 거죠. 지금은 많이 유명해지셨지만 공연 계약할 때마다 본인 페이 올리는 대신 앙상블 페이 올려주라고 하신다는 이야기 듣고 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술퍼맨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다. 어머니가 "여기 와서 밥 먹으라고 만들어놓은 메뉴가 많은데 그걸 모르더라고요. 술도 마시지만 음식을 먹으러 오는 곳이에요."라고 말할 만큼 맛깔난 밥집뿐 아니라 지난해 연말 공연계 지인들과 함께 연 '제1회 아티스트 파티' 등 공연계 또 다른 소통과 놀이의 창구 역할로도 술퍼맨은 매일 변신 중이다.

"가끔 아버지도 올라오시는데 정말 흥도 입담도 좋으세요. 항상 "너가 빨리 유명해져서 나 아침마당 나가보자, 전진, 장동민 아빠처럼 뜰 수 있단 말이야."라고 하시죠. <진짜 진짜 좋아해> 전주 공연 할 때 보러 오셨는데 커튼콜 때 무대 앞까지 나오셔서 춤추셨어요. 전날 배우들한테 아버지가 회를 쏘셨거든요. 저희 아버지 얼굴을 배우들이 다 알아서 무대 위로 올라오시라 했더니 바로 올라오셔서. (웃음) 배우 아들과 한 무대에서 커튼콜한 유일한 아빠 아닐까요?(웃음)"

술퍼맨에 왔을 때, 최재웅이나 박해수가 해물라면을 먹고 있거나, 공연 중인 배우들의 단체 파티가 있거나, 또 흥 많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상꺼풀이 짙고 최성환과는 많이 닮지 않은 최동수 사장님이 계시거나, 혹은 최성환과 똑 닮은 미모의 신영숙 쉐프님이 환하게 웃고 있다면, 바로 맞게 찾아 온 것이니 주저 말고 맛난 음식과 한잔의 술을 주문해 보자. 오후 5시부터 8시까지(2인 이상) 순두부, 오징어찌개 등의 저렴한 저녁 식사 메뉴도 준비되어 있고 2월까지 배우 및 공연티켓 소지자(금, 토 제외)에겐 해물라면이 서비스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 디자인: 괭씨, 최주희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