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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톡톡아트]아폴론, 남자들이 좋아하는 몸

유경희 기자I 2012.05.16 12:10:00

"나체만이 고도로 문명화된 상태다!"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그리스 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신의 있다면?"
"제우스!" 틀렸다! 아폴론이다. 우리는 제우스가 신중의 신이니까 그를 그리스를 대표하는 가장 막강한 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고전의 전형이 되어버린 그리스라는 하나의 전범을 생각할 때, 아폴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그리스 시대 아폴론상으로 그의 상징물인 리라, 화살통 등이 거의 다 표현됐다
통상 태양신으로 알려진 아폴로는 의술의 신, 음악의 신, 예언의 신이기도 하다. 아폴론은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음악의 신답게 리라를 켜고 있거나, 명궁수답게 화살을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델포이의 불량배인 퓌톤이라는 뱀을 처치한 까닭에 뱀이 휘감긴 화살통이 옆에 놓여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아폴론이 활과 화살도 들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는 신이 아폴론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답게 그가 건드리는 것을 밝게 빛나게 하여 가시적이 되게 해주는 신이다. 모든 밝게 빛남과 드러남, 그리고 명료해짐은 바로 아폴론의 신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우뚝 솟아남 즉 탁월함의 신이다. 호메로스가 그를 `신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신`이라고 부른 이유다. 그런 까닭에 태양의 신이 쏘는 화살은 다름 아닌 빛살인 것이다. 생명을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모든 어두운 것을 제거하고 병든 것을 치료하는 생명의 빛살이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서쪽 프리즈의 정중앙에 아폴론이 서있는 것이다. 아폴론은 각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지정해주고, 작고 악한 것을 맨 구석으로 쫓아버리는 존재다. 이처럼 그리스 정신의 모토인 통치, 비율, 척도, 조화는 본래 아폴론이 발명한 `고전적 질서`의 기초들이다. 아폴론은 명백한 질서의 신, 드러냄의 신, 비은폐성의 신이다. 빛을 발하는 자가 나타남으로써 세계는 암흑으로부터 끌어올려지고, 질서로서 지배체제가 확립되며, 비로소 조화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아폴론상의 전형은 `나체`로 드러난다! 그는 언제나 벌거벗은 채 우아한 몸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아폴론은 활을 당길 때 자신의 옷을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팔에 걸쳐 놓는다. 아폴론(뿐만 아니라 헤르메스와 디오니소스도 벗고 있지만)은 왜 그렇게 훌렁 벗고 있었던 것일까? 아폴론적 견지에서 보면, 태양이 벗는 것이니 결국 자신이 벗으면, 타인을 비추는 판국이 된다. 이 얼마나 멋진가? 내가 벗음으로써 타인을 노출시킨다는 빛의 논리라니! 
▲ 로마시대에 제작된 아폴론, 벨베데레 아폴론,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아폴론상(왼쪽부터)

또 다른 관점에서 그리스 시대의 벌거벗음은 문명화된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벌거벗음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완전히 편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인은 벌거벗은 아폴론상을 통해 그들의 육체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자는 빼고! 여자들은 도시에서 나체를 드러내지 못했다. 여성들은 주로 집안에 갇혀 지냈으며, 집에서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얇은 가운을 입었고, 집을 나서면 우중충한 아마포를 입어야 했다. 도시의 지배계층인 남성들만이 헐렁한 옷을 입은 채 공공장소나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그들의 육체를 노출시켰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나체는 저속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혹은 문명화된 사람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런 노출의 미학은 그들의 신전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신전이 있기 때문에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어느 곳에서든지 잘 보일 수 있도록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스스로를 태양 아래 빛나게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 파르테논 신전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아테네시가지의 모습(좌), 해거름이 일몰의 시간에 파르테논 신저의 모습(우)

사실상 아폴론상은 그리스의 동성애적 취향을 반영하는 조각이다. 예컨대 도시국가의 철인정치를 위한 스폰서쉽으로서의 동성애 관계는 성인남자와 어린남자의 결합이어야 했다. 동년배끼리는 생산적이지 못한, 차라리 잉여에 불과한 몸짓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금기시되었다. 어쨌거나 아폴론의 몸은 대부분 성인남성(에라스테스)의 몸이라기보다는 성인남성이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어린남자(에로메노스)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인도 아이도 아닌 경계에 있는 모호한 몸,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견고함과 부드러움의 중간에 있는 애매한 몸이라고나 할까?! 그런 애매모호함이야말로 낭만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심리적 기제는 아닐까?

따라서 아폴론상을 가만 들여다보면, 마치 오늘날 매스콤에 등장하는 남자 아이돌의 몸과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즘 아이돌은 아직 소년 상태를 벗어나지 않은, 여성을 뺨칠만큼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몸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혹시 "성인남자를 위한 몸이 아닐까?"라고 슬며시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보통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하는 헤라클레스적 울끈불끈(?)한 근육질의 남성이 아닌, 잔근육을 가진 섬세하고 미려한 소년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여성이 찬탄하는 수컷(?)의 몸이 아닌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성을 가진 남성의 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서쪽 프리즈의 제우스의 모습으로 세계의 질서를 주창하고 있다


얼굴과 몸매 모두 아름다운 아폴론은 어떻게 몸을 단련했을까? 몸을 단련한다는 것은 또 무슨 함의를 가지는가? 먼저 아폴론(혹은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남자)은 자기의 상대남자들과 레슬링을 통해 몸을 단련한다. 김나지움에서 어깨끈만 풀면 되는 키톤 같은 옷을 벗어던지고, 올리브오일을 한껏 바르고 최대한의 체열을 내기 위한 운동인 레슬링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신체의 접촉면이 가장 많은 레슬링이라는 운동이 남성동성애의 구애의 한 방법이라니, 참으로 흥미롭고도 적절한 대화법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은 체열을 일으켜 몸을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레슬링이 끝나면 김나지움 근처 숲속의 어딘가로 쌍쌍이 사라지곤 했을 것이다. 거기에서 어떤 은밀한 행위가 일어났을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무엇보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산파술에 근거한 철학적 대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인남성은 어린남자에게 `덕(아레테arete: 탁월함)`과 절도를 가르쳐야만 했다. 이런 견지에서 "건강한 육체에 아름다운 영혼이 깃든다"는 그리스적 사유의 방식이 그대로 아폴론이라는 하나의 몸 속에 녹아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쁘면 착한 거"라는 그리스의 미적 기준 말이다.
 
▲유 경 희(미술평론가,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년간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했고, 뉴욕대에서 예술행정 전문가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예술가의 탄생], [테마가 있는 미술여행] 등이 있다. 현재 대학원 최고위과정과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하이브리드적인 미술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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