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벌고 동네도 지켜" '토스 성지' 파출소 사랑방 된 사연

이유림 기자I 2024.07.31 08:09:24

'토스 앱테크 성지'로 떠오른 방학파출소
매일 아침 30여명 모여 토스 포인트 적립
밤사이 동네 구석구석 치안 공유 '1석2조'
주민도 경찰도 만족…"이젠 사랑방 같아요"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박동현 수습기자] “주민 여러분, 지금 바로 토스 애플리케이션 켜주세요”

매일 아침 서울 도봉구 방학파출소 앞에선 주민 수십명이 모여 일제히 토스 앱을 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최근 이곳 주민 사이에서 방학파출소가 ‘토스(toss) 앱테크(애플리케이션+재테크)의 성지’로 떠올랐다. 주민들은 ‘함께 토스 켜고 포인트 받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파출소 앞에 모여든다. 이 서비스는 토스 앱을 켠 사용자의 반경 100m 근처에 토스 앱을 켠 다른 사용자가 있으면 포인트를 받는 구조다. 여러 명이 동시에 앱을 켜는 조건을 만족할 때 더 많은 포인트가 제공된다. 방학파출소는 이 점을 이용해 주민들을 불러 모아 ‘방학동 구석구석 내가 지킨다! 방학동 돌보미 모여라!’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은 서로 간 포인트를 적립하고, 경찰은 주민과 동네 치안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고’라는 설명이다.

지난 26일 오전 6시 40분 서울 도봉경찰서 방학파출소에 모인 주민들이 토스(toss) 포인트를 받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있다. (사진=박동현 수습기자)
지난 26일 오전 6시 40분. 이른 시간에도 어김없이 주민들 30여명이 방학파출소에 모여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주민들은 토스 앱을 켜고 하루치 포인트를 적립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만지면서도 하루 동안 동네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소식을 수다 떨 듯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방학파출소장 김용범 경감은 “전선이 내려와서 차가 지나다닐 때 걸릴 것 같다는 신고부터 빈집이 방치돼 있어 불량 청소년이 드나든다는 신고, 비가 많이 내리고 침수된 구역이 있다는 신고 등 다양한 소식을 듣게 된다”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 요소를 주민들의 도움으로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모임은 주민들이 파출소 인근 사슴어린이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여 토스 포인트를 적립하던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다 원재희 방학파출소 4팀장이 우연히 이를 목격하고 주민들과 치안 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방학파출소가 주민들에게 협업을 제안하면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후 주민들 사이에서 ‘방학파출소에 가면 포인트 적립이 쏠쏠하다’는 입소문이 났고 50여명 넘게 모이는 때도 있었다. 토스가 하루 최대 적립 금액을 85원으로 제한하면서 현재는 참여 주민의 수가 30여명으로 줄었으나 여전히 1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방학파출소가 ‘방학동 돌보미’라는 명칭으로 회장과 총무를 뽑아 위촉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함께 참여하게 된 경찰관 중에서 토스 누적 포인트가 15만원을 넘은 경우도 있다.

경찰은 이 모임을 이용해 주민에게 교육·홍보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주요 사건이나 유의사항을 주민들에게 공유하며 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날은 주민들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교육을 함께 진행했다. 경찰은 주민들에게 팸플릿을 통해 지난 6~7월간 방학파출소 관할 지역에서만 보이스피싱 사건이 6건 발생했다고 알렸다. 지난달에는 피해자가 사슴어린이공원에서 2500만원을 건네주고, 그다음 날 3000만원을 또 건네주려는 걸 파출소에서 막기도 했다. 김용범 소장은 주민들에게 “지난 3년간 도봉에서만 350여건의 보이스피싱이 발생했고 피해액이 110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통장 대 통장으로 입금하기보다는 대면 편취로 직접 가져가는 일이 많다”며 경각심을 당부했다.

방학파출소는 경찰과 주민 간 신뢰와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날 아침에도 경찰과 주민들은 서로 친숙하게 ‘좋은 아침이다’ ‘식사는 하셨나’라며 반갑게 안부를 건네는 모습이었다. 원재희 방학파출소 4팀장은 “주민들이 파출소를 편하게 여길수록 동네는 더욱 안전해진다”며 “매일 아침 주민들과 포인트 적립도 하고 우리(경찰)가 놓치는 치안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으니 1석2조”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파출소가 ‘사랑방’처럼 느껴질 뿐 아니라 동네 치안에 기여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방학동 돌보미 회장으로 활동하는 김경숙(59)씨는 “아침마다 동네 정보를 공유하고 순찰도 같이 돌고 교통 캠페인도 함께 하는 등 동네 치안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며 “요즘은 같은 동네에 살아도 주민들끼리 데면데면한 경우가 많은데, 날마다 모이니까 많이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방학동 주민 유모(85)씨는 “다들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오고, 추우면 옷을 껴입고 나온다”며 주민들의 열정을 치켜세웠다. 또 다른 주민 백모(67)씨는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 경찰은 과거 공권력이 강하던 시절의 이미지가 남아 있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저 친절하고 편안한 존재 같다”고 밝혔다.

김용범 소장은 “주민과 아침을 같이 맞이하는 데 감사하고, 밤새 지역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면서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어 좋다”며 “지역 주민이 치안활동에 참여하는 모범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경찰과 주민의 접점은 늘리기 위해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6일 서울 도봉경찰서 방학파출소에서 만난 김용범 파출소장(오른쪽), 원재희 4팀장(왼쪽)(사진=박동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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