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상까지 무사히 통과한 약일 경우 보건당국의 시판 허가를 받아 환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임상 표본이 극히 제한적인데다 허가를 받기 전까지 임상 대상은 노인이나 소아 임산부 등을 제외한 건강한 성인으로 제한된다. 또 제약산업 선진국들인 미국, 유럽의 신약은 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판매 중이라고 해서 임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시판 후 임상이라는 이름의 임상 4상이 진행된다. 이 임상은 해당 약품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한 계속된다. 특정 조건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이 아닌 통제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이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 등 안전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획득해 설명서에 새롭게 반영하기도 하고 적응증을 추가하기도 한다. 어떤 특정한 약에 대한 유효성과 안전성은 결국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직접 먹어보지 않고서는 그 약이 내게 잘 듣는지 혹은 그 약을 먹고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 맞춤형 정밀의약품이다. 개개인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최적의 의약품을 최적의 용량으로 맞춰주는 약이다. 피를 묽게 해 혈전(핏덩어리)을 예방하는 ‘항응고제’의 하나인 ‘와파린(Warfarin)’을 예로 들어보자. 이 약은 사람에 따라 반응 정도가 제각각이어서 경우에 따라선 혈액 응고를 막아주는 대신 체내 곳곳에서 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때문에 와파린을 복용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매일 또는 매주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
피를 떨어뜨려 굳는 속도를 측정해 적당한 용량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만약 이 과정이 없다면 혈전이 생기거나 혹은 출혈이 생길 수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검사를 통해 와파린의 용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와파린 대사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CYP2C9, VKORC1)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지혈이 되지 않는 부작용을 불러오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해당 유전자 변이의 유무나 정도를 미리 확인하면 와파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유방암 표적 치료제인 허셉틴은 ‘HER2 유전자’가 지나치게 많이 발현된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항암제다. 허셉틴은 HER2 양성 유방 암세포만 선택해 죽이는 표적항암제다. 현재 유방암 환자들의 25% 가량은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들이다. 허셉틴을 투여하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HER2 과발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최근에는 4차산업혁명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정밀의학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최초의 의료용 인공지능(AI)인 IBM의 ‘왓슨’은 암 환자의 정보를 미리 입력하면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한다. 최신의학 가이드라인, 환자의 검사·진료 기록 및 유전자 정보 등 방대한 빅데이터를 종합해 추천 치료법, 고려해 볼 치료법, 비추천 치료법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도움말=이지현 과학커뮤니케이터(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