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의 눈물] "경찰 보면 겁부터 납니다"

안승찬 기자I 2014.03.14 09:12:39

택배 박스 하나 배달하면 남는 돈 750원
'왜 늦었냐' 욕 먹으며 날라도 할달에 200만원
정부가 허가 안내줘..번호판값 1800만원 껑충
경찰보다 무서운 카파라치..오늘 하루 안걸리면 다행이죠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지난 11일 경기도 한 택배분류터미널에서 만난 C택배회사 김남용 팀장(42, 가명)은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기자를 처음 만난다고 했다. 충혈된 큰 눈으로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김 팀장은 신용불량자다. 막노동부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김 팀장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어쩌다 택배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할 일이 많은 게 좋았다. 택배 물량은 끝도 없이 쏟아졌다. 열심히 발품을 팔면 보수도 조금씩 늘었다. 그는 어느새 8명의 팀원을 이끄는 팀장이 됐다.

하지만 김 팀장은 ‘무허가’ 택배기사다.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불법 신분이다.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영업용 화물차에 대한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그는 여전히 허가증을 받지 못하고 일반 개인 번호판을 달고 있다.

“신용불량자라고 허가를 안 내주는 것 같은데, 그럼 저 같은 사람은 도둑질하면서 살라는 말입니까?.” 조용조용하던 김 팀장의 목소리가 순간 올라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침묵 속에 김 팀장이 기자의 손을 끌었다. “우리 팀에 소개하고 싶은 형님이 있어요.”

건물 모퉁이를 도니 멀리서 부산하게 택배를 자신의 차량에 옮기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이름을 최세훈(47, 가명)이라 소개한 그는 부인과 함께 6년째 택배 일을 하고 있다. 부부가 매일 아침 6시30분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한다. 매일 15시간이 넘는 강행군이다.

최씨는 많게는 하루에 200박스의 택배를 배달한다. 오전 내내 컨베이어 벨트에서 배달할 택배를 자신의 차량에 싣는 준비작업을 거쳐 낮 12시부터 배달을 시작한다. 별도의 식사시간도 쉬는 시간도 없이 3분마다 하나씩 배달해야 밤 10시에 겨우 끝낼 수 있다. 택배 하나 배달하면 최씨에서 떨어지는 돈은 750원정도다. 물량이 적을 때는 배달 물량이 절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최씨는 이렇게 일해서 월 200만~300만원가량을 번다.

“그나마 제가 일찍 결혼해서 애들을 다 키웠어요. 첫째는 군대가 있고, 둘째도 대학생이에요. 안그랬으면 이 일도 못하죠.” 최씨는 겸연쩍게 웃었다.

최씨와 최씨의 부인도 무허가 택배 사업자다. “배달하러 나갔다가 경찰만 보면 깜짝 놀라요. 사실 많이 불안하죠.”

유독 최씨 부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내 전체 택배기사 가운에 3분의1이 무허가 차량이다. 김 팀장 밑에 있는 직원들도 절반가량이 무허가다.

온라인이나 홈쇼핑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택배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택배 기사의 수요가 많아졌다. 하지만 정부는 운송차량 허가를 추가로 내주지 않았다. 수많은 무허가 택배기사가 양산됐다. 그간은 정부도 눈을 감아줬다. 그런대로 묘한 균형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강원도와 경기도 성남시에서 지난달부터 무허가 택배기사 단속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내년 1월부터 신고포상금제를 시행한다.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 6개월 이내의 운행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노란색 화물운송 번호판이 없는 택배기사는 갑자기 벼랑 끝에 몰렸다. 정부는 아직 팔짱만 끼고 있다.

화물차 허가증을 뒷돈을 받고 구매하는 시장도 만들어졌다. 갈수록 허가증이 귀해지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노란색 허가 번호판 사려면 요즘 1800만원 이상 줘야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런 돈이 어디 있습니까?” 최씨가 말했다. 계속 택배일을 하려면 허가 번호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돈 주고 산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불안한 택배기사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까지 등장했다. 허가 번호판을 미리 사들인 다음 돈을 받고 빌려주는 대행업체다. 한달에 16만원씩 주면 노란색 허가 번호판을 빌려준다.

김 팀장은 말을 이었다. “정부 사람 만나면 제발 얘기 좀 해주세요. 대체 왜 허가를 안 내주는지 저희는 이해가 안돼요. 우리도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범죄자 취급을 하면 우리더러 길거리로 나가라는 얘기랑 똑같잖아요. 안그렇습니까?”

김 팀장은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에게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며칠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스마트폰 액세사리 택배가 와 있었다. ‘이걸 배달한 기사는 과연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있었을까?’ 허망한 상상을 했다. 뜯겨진 택배 상자가 자꾸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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