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문(63·사진) 밀레코리아 대표는 가전제품까지 적용을 확산하고 있는 ‘스마트 기능’에 관해 의문을 제기했다. 버튼 한두 번만 누르면 되는 일을 스마트폰으로 동작시키는 게 소비자에게 어떤 효과를 줄 지 의문이라고 했다.
115년 전통의 독일 명품가전 밀레의 한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안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조직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라’는 주문을 하면서 연평균 두 자리 수의 매출 신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냉장고와 냉동고를 출시했다. 안 대표는 “아직 제품이 전국에 다 보급되지 못했다”며 “제품에 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지속해서 늘고 있어 올 여름이 지나고 나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기대했다.
밀레코리아는 올해 다양한 제품을 국내 소비자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옷감 손상을 최소화하는 드럼 세탁기를 출시한 데 이어 1분기 내 진공청소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또 3분기엔 식기세척기와 오븐 등 주방가전 제품군인 ‘제너레이션 6000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다.
안 대표는 “올해는 청소기와 인덕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40만 원대 밀레 진공청소기가 그동안은 비싸다는 이유로 소비자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난해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진공청소기 ‘모션싱크’를 내놓으면서 프리미엄 청소기 제품의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국내 제조사들이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군을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은 막연하게 비싸다고만 생각하는 외국산 제품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의 임기는 2016년까지. 내년이면 벌써 밀레코리아를 이끌어 온 지 10년이 된다. 글로벌 기업 한국법인장 가운데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그는 “성실한 직원들 덕분에 오랫동안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며 공(功)을 임직원들에게 돌렸다.
안 대표는 “자신의 직급에 맞는 일을 하게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상위 직급에 있는 직원이 하위 직급 일까지 모두 하려고 하면 하위 직급에 있는 사람들은 정작 할 일이 없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자신의 직급에 맞는 일을 하게끔 한다는 것.
하지만 업무 계획을 짜거나 아이디어를 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위치보다 한 직급 위의 시선에서 업무를 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A대리가 과장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업무 계획을 짤 수 있어야 좀 더 시야가 넓어지고, 나중에 과장으로 승진했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안 대표는 “이런 의식 교육은 등산과 같은 논리”라고 강조했다. 산 중턱에 오르면 중턱에서 볼 수 있는 모습만 볼 수 있지만, 정상까지 등반하면 더 넓은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 대표의 장수비결은 스스로 노력하고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취임 이후 국내 건설사와 함께 기업 간 거래(B2B) 방식을 이용해 ‘빌트인 가전’ 사업을 선보여 밀레 가전제품이 빠르게 국내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위기를 느낀 안 대표는 발 빠르게 기업과 소비자(B2C) 거래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 판매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두 가지 사업방식은 모두 처음에 밀레 본사의 반대에 부딪혔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명품 가전 밀레의 정체성과 상반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안 대표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해당 사업을 추진, 오히려 괄목한 성과를 거뒀다.
그는 “처음에는 반대했던 본사에서도 사업 성과가 나타나자 해외 법인장들에게 성공 사례를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왔다”며 “결국 2007년부터는 밀레의 모든 해외법인이 온라인 쇼핑 판매를 하도록 본사 방침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안 대표에 관한 밀레 본사의 신뢰도는 절대적이다. 현지인을 법인장으로 선임하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본사에서 파견해 현지 법인장을 견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독일인이 밀레코리아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본사의 신뢰도가 절대적이라는 방증이다.
안 대표는 밀레코리아 대표 임기를 마치는 2016년이면 ㈜쌍용 입사로 시작했던 샐러리맨 생활이 만 40년이 된다. 그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40년간 샐러리맨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데 대해 감사한다”며 “그동안 받았던 혜택을 미력하나마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은퇴 이후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문화나 역사 등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문화 해설사나 관광 가이드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내비쳤다. 그는 “쌍용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각 국을 경험해보면서 그 나라의 문화나 정치, 역사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올바른 한국사를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브랜드 일색인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밀레를 포함한 외국 가전 브랜드들의 역할이 좀 더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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