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목멱칼럼]반복되는 산업재해, 이대로는 못 막는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최은영 기자I 2026.06.08 05:15:00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기고
사고 책임 묻기에 급급. 적절한 의무 권한 배분 없어
원하청 해야할 일 헷갈리고 중처법·산안법 상충되기도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최근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산업안전에 어느 나라보다 어느 때보다 많은 자원을 들이고 처벌도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인데도 법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법정책 전반에 대한 진지하고 근본적인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먼저 법제부터가 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거두기에는 턱없이 부실하다. 예컨대 최근 사고를 포함해 많은 사고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위험성 평가 제도의 경우 글로벌 스탠더드와 달리 핵심사항인 위험성 추정이 사실상 빠져 있고 기본개념부터가 잘못돼 있는 등 허점투성이다. 위험성평가 외에도 많은 사항이 실효성 없이 정해지고 엉성한 채로 집행되고 있다. 여기에 처벌 중심 정책이 더해져 처벌 회피와 서류 작성 중심의 안전관리를 조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결과책임을 묻는 식의 수사 또한 기업의 재해 예방 노력에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원인 규명부터 재발방지를 위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누군가를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법원도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는 유죄 결론을 내려놓고 논리를 꿰맞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죄 판결의 상당수가 인과관계 논증을 생략하거나 비약하고 예견 가능성 여부는 판단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형사법리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수사기관이 그 실마리를 제공하는 측면이 크다.

원청(도급인), 하청 등 각 의무주체의 역할과 책임이 매우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것도 산업안전에 큰 걸림돌이다. 고용노동부조차 누가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지 판단하거나 제시할 수 없을 지경이다. 엄연히 별개의 의무주체인데 동일한 의무를 부담한다는 비상식적이고 헌법에 위배되는 해석을 버젓이 하고 있다. 같은 법의 규정들 간에도 의무가 충돌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같은 대상을 놓고 한군데에선 원청에 하청과 동일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해석하면서 다른 곳에선 원청에 협력, 조정, 확인 등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원청 입장에선 어느 의무를 따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성격상 두 유형의 의무를 병행적으로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재해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하면 할수록 원청이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자의적 해석도 횡행하고 있다. 형법에서 철저히 배격하고 있는 연대책임, 대위책임, 전가책임이 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행정편의주의 접근으로는 원청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 안전조치에 주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작 착한 사마리아인의 출현을 가로막을 작정인지 묻고 싶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노동조합법(일명 노란봉투법)이 상충되는 문제 또한 심각하다. 기업들은 전문가 조력을 받더라도 누가 어떻게 의무를 이행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거나 모순되는 요구를 받게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어느 하나의 법은 위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산업안전이 형식으로 흐르고 예방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설령 이 같은 문제 발생을 의도치 않았더라도 현실이 의도와 딴판으로 돌아간다면 즉시 바로잡는 게 책임 있는 자세다.

에이미 애드먼슨 하버드대 교수는 베스트셀러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 공포는 자원을 엉뚱한 데 소비하도록 하고 사고력, 창의력, 문제 해결력을 갉아먹는다고 강조했다. 안전처럼 구성원의 학습과 협력이 중요한 영역에서 공포는 효과는커녕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산업현장의 안전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공포에 기반한 현행 법정책에 큰 수술과 대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엄청난 행정자원을 투입하면서도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등 ‘가성비’ 떨어지는 현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재해 유족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유사재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문제투성이인 예방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범인 찾기에 급급하느라 학습과 시스템 개선의 기회를 놓치는 일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