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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성적주의’ 산실 엘리트 체육, 학교 폭력으로 얼룩지다

김무연 기자I 2021.03.06 11:00:00

박정희 전 대통령, 한국체대 만들면서 엘리트 체육 육성
5공화국, 3S 정책으로 엘리트 스포츠인 입지 높아져
성적 지상주의 맹점… 감독·코치·주전급 선수 입김 세
성폭행, 폭력 등 ‘닫힌 사회’에서 다양한 범죄 일어나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이다영·이재영 자매의 학교 폭력 사건으로 체육계에서 자신도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하는 ‘학폭투(학폭+미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는 잘못을 시인하고 은퇴를 선언했고, 일부는 거짓 모함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체육계에서 감독, 코치는 물론 선배, 동료들의 폭행 문제가 매번 불거지면서도 별 다른 자정 작용을 보이고 있지 않단 점이다.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된 ‘엘리트 체육’의 한계란 지적이이다. 엘리트 체육은 체육계를 닫힌 사회로 만들고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외부인이 쉽게 감지하거나 참견하지 못하게 해 비슷한 폭력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진 흥국 핑크스파이더즈 소속 배구선수 이재영(사진 왼쪽)·이다영 자매(사진=연합뉴스)


◇ 선수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 국제 대회 성과로

엘리트 체육이란 재능이 있는 사람을 차출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문적인 체육 지도자에게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도록 하는 체육을 말한다. 보통 일반 학업 및 직업과 스포츠를 병행하는 생활체육의 반대 개념이다. 현재 우리나라 프로 스프츠 선수들은 대부분 엘리트 체육으로 양성된다.

우리나라가 엘리트 체육을 시행하는 까닭은 단기간에 국제 대회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해 국위를 선양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탓이다. 한국전쟁 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꼽혔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각종 스포츠 대회에서 눈에 띠는 활약을 펼치는 것이었다.

체육을 국위선양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故) 박정희 전(前) 대통령이다. 1976년엔 양정모 선수는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에서 한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자 박 전 대통령은 국위선양을 위한 엘리트스포츠에 큰 관심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곧바로 한국체육대학을 만들 것을 지시했고 1977년 한국체대가 정식 개교했다.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자 3S 정책을 도입했고, 국내에도 프로 스포츠 시대가 열렸다.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함에 따라 엘리트 체육인들이 설 무대가 확장됐다. 여기에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고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필요성이 생기면서 엘리트 체육은 더욱 공고화 됐다.

엘리트 체육 강화는 국제대회에서 높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인 양궁에선 세계 최고로 꼽히며, 쇼트트랙 부문에서도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축구 또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18년 러시아 대회까지 9회 연속 본선 진출 행진을 이어갈 정도로 성장했다. 유도 또한 양궁, 태권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있다.

조재범(사진=연합뉴스)
◇ 엘리츠 체육의 그늘… 성폭행과 학교 폭력

국제대회 성적이라는 빛 뒤에는 억압적인 교육 환경이 만들어 내는 폭행, 성폭행의 그림자도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엘리트 체육은 사실상 초등학교부터 학업을 중단하고 체육 훈련에만 매진한다. 따라서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프로 스포츠단에 입단하지 않는 이상 다른 분야에 도전하기 극히 어렵다.

따라서 시합 출전 여부를 결정하거나 상위 학교 추천 자격을 가진 감독이나 선수를 평가하는 코치 등의 권한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감독이나 코치가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때론 폭력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선수 입장에선 ‘생사여탈권’을 쥔 그들에게 대항하기 어렵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폭발한 것이 바로 2019년 체육계 성추문 폭로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코치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결국 조 코치는 지난 1월 징역 10년6월 형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을 필두로 유도계, 농구계, 양궁계 등에서 추가적으로 성추문 폭로가 이어졌다.

여기에 체육계에서 동료 또는 선후배간 학교 폭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학창 시절 감독 및 코치가 비호하는 주전급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동기나 후배를 대상으로 학교 폭력을 가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 자매의 학교 폭력 사건이 대표적이다. 자매는 같은 방을 쓰던 동기에게 칼을 들이밀면서 심부름을 시키거나 부모님을 욕하는 등 학교 폭력을 행사했다.

스포츠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다. 이미 2019년 민관 합동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7차례나 권고문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기존 엘리트 육성시스템 전면 혁신을 위해 체육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전국소년체육대회 구조개편 △주중대회 개최 금지 등을 권고했다.

다만 이런 권고 사항도 2019년에 이어 2021년에도 스포츠계가 추문으로 얼룩지는 것을 막진 못했다. 조용철 서강대 체육교육대학원 교수는 “일련의 폭력 사태를 알지 못해 막지 못한 게 아니다. 정부나 체욱회 쪽에서 폭력 사태를 근절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라면서 “기존 체육계는 엘리트 체육 죽이기라는 저항을 멈추고 현재까지 개설한 여러 로드맵을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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