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북한의 수차례 무인기 도발에 침묵하던 러시아가 북한 주장에 동조하며 북러 조약비준 운운에 파병까지 받은 상황은 장차 북러 대 서방 간 국제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러 전쟁 장기화는 러시아에 전쟁 피로증 확산과 만성적 병력 및 탄약보급 부족사태를 초래해 전쟁 지속력 유지를 가로막고, 푸틴이 북한에 군사지원을 구걸하는 처지로 전락시켰다. 김정은 또한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 관계를 파탄내고 적대적 2국가론을 선언하여 북북(北北)갈등과 내부모순을 야기·확산시키고 있다.
국가위기 시 정부의 역할은 위기충격 최소화와 지속시간 단축, 위기발생 이전 상태로 복원을 주도하여 주권과 국민안전을 담보하는 것이다. 안보위기가 발생하면 양측 공히 상대방이 싸울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를 가장 궁금해 한다. 상대방의 도발이 협상을 위한 의지의 과장(bluffing)인지, 진짜 한판 붙자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방 언행이 허풍전략으로 드러나도 내 결의를 상대방에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이때 내가 치러야 할 비용(Costly Signaling)까지 수반되면 그 효과는 훨씬 더 크다.
가령 전군전투태세 발령과 즉·강·끝 대응지시, 위기해소 실패시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메시지는 내 의지가 변경불가라는 신호이다. 북한의 무인기 침범, 쓰레기풍선, 도로 폭파쇼, 적대적 2국가 선언은 철저히 계산된 압박전략(The strategy of Calculated Pressure)으로 제대로 대응조치를 못할 경우 그들의 공세적 위기관리전략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한반도 위기가 해소보다 현상유지나 위기 고조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러시아 변수는 설상가상이 되고 있다. 정부와 군은 정중동(靜中動)하되 이번 국가위기관리는 이전과 다른 위기인식과 선제적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은 다음과 같다.
우선, 즉·강·끝 전투태세유지이다. 북한의 내부모순 심화와 만성적 경제침체, 신의주 대홍수 복구 지연 등은 주민동요와 불만 팽배 해소대책으로 외부위협과장과 적 만들기, 내부결속용 저·고강도 도발이 불가피한 처지다. 동향 모니터링 및 경계강화, 군 기강확립과 응징태세유지, 동맹·우방국과의 협력강화 등 북한도발 시 처절하게 응징할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민방위 개념과 대응태세 재확립이다. 북한의 빈번한 쓰레기풍선과 무인기 도발은 현행법상 민방위 사태와 무관한데다 군-민방위경보센터 이원화 경보발령시스템, 경보별 취명(吹鳴) 구분 곤란, 그리고 주민대피 이동로 모호 등으로 피해 증폭이 우려된다. 또한 민방위대피소의 자체 화생방 방호와 장사정포 피해방지, 비축용수 안정성 확보, 민방위 사태 재정립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셋째, 국가동원체제의 현장 작동성 점검·보완이다. 평시 적 도발을 억제하고 전시 국가총력전 수행과 정부기능을 유지하는 국가동원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원자원관리업무를 외면·도외시 하는 풍토가 여전해 유사시 국가동원을 의문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사시 전쟁 승패를 가름 짓고 국가통수권자의 전쟁지도 결심 지표가 되는 국가동원은 ‘한국형 3축 체계’에 버금가는 필수핵심기능이다.
끝으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국가체제의 균열·붕괴는 통상 장기화·단계적으로 발생하지만 과거 동독처럼 순식간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우크라 전쟁 종료 후 북러 밀월 특수가 사라지고 소원한 대중관계 지속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체제 내부모순과 주민불만 비등으로 급변사태 초래 가능성이 높다. 북한주민의 연착륙과 통일 앞당기기, 러시아의 북한 개입 차단은 국제사회의 협조·대응이 필수적이다.
국제질서 전환기에 북한의 핵위협과 우크라전 파병 여파는 한반도와 지구촌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다. 국가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탄핵놀음이 적시적기 국가위기관리를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은 자유를 잃고 전체주의와 굴종의 나락으로 빠지는 위기를 앞서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