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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용익의 록코노믹스]라이브 에이드가 만들어낸 기적

피용익 기자I 2018.12.08 09:32:20
라이브 에이드 (BBC 방송 화면 캡처)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인해 다시 조명받고 있는 역사적 공연 ‘라이브 에이드’는 아프리카 기아 문제를 돕고 싶어했던 한 록 뮤지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아일랜드 록밴드 붐타운래츠의 리드싱어였던 밥 겔도프는 1984년 10월23일 영국 BBC 방송이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생생한 영상을 본 그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당장 동료 뮤지션인 울트라복스의 밋지 유르에게 연락해 에티오피아를 돕기 위한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들이 공동으로 작사·작곡한 노래가 바로 “Do They Know It‘s Christmas?”다.

이어 겔도프는 이 노래를 함께 부르고 연주할 뮤지션들을 모집했다. 보노(U2), 필 콜린스, 보이 조지(컬처 클럽), 사이먼 르 본(듀란 듀란), 조지 마이클(웸), 스팅, 조디 와틀리 등당대 최고의 영국 및 아일랜드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노래를 녹음하고, 수익금은 에티오피아를 돕는 데 쓴다는 조건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 아름다운 슈퍼그룹의 이름은 ’밴드 에이드‘로 정해졌다.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는 1984년 12월3일에 싱글로 발매돼 크리스마스 시즌 차트 1위에 올랐고, 그 해 연말까지 영국에서만 300만장 판매를 돌파했다. 미국에선 빌보드 차트 10위 내 집입에 실패했지만, 이듬해 1월까지 250만장이 팔렸다. 겔도프는 이 곡으로 7만 파운드를 모금하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발매 이후 1년 간 수익은 800만 파운드에 달했다.

겔도프가 수익금 전액을 에티오피아에 기부하는 과정에선 약간의 문제도 있었다. 영국 정부가 음반 판매 부가가치세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 금액이 에티오피아가 아닌 영국으로 돌아갈 판이었다. 다만 겔도프가 직접 마가렛 대처 당시 영국 총리와 만나면서 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됐다. 영국 정부는 이 음반으로 발생한 세수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고, 대처 총리는 더 나아가 ‘기아 구제’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제에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싱글 뒷면
밴드 에이드가 영국 및 아일랜드 출신 뮤지션들이 주축이 된 슈퍼그룹이었다면,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등이 중심이 된 미국 뮤지션들은 ‘USA 포 아프리카’를 만들어 “We Are The World”라는 히트곡을 발매했다. 1985년 3월7일에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1000만장 넘게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겔도프는 에티오피아 기금을 더 마련하기 위해 골몰하던 중 컬처클럽의 보이 조지의 제안을 받고 대규모 공연을 구상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공연을 하고, 위성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하면 에티오피아 문제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1985년 7월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스타디움에서 역사적인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동시 개최됐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등장하는 퀸의 무대는 사실 16시간 공연 가운데 단 20분에 불과하다. 영국 무대에는 퀸 외에도 폴 매카트니, 엘튼 존, 데이빗 보위, 더 후, U2, 다이어 스트레이츠, 엘비스 코스텔로 등이 올랐다. 미국에선 밥 딜런, 듀란듀란, 레드 제플린, 필 콜린스, 에릭 클랩튼, 닐 영, 마돈나, 산타나, 톰 페티, 브라이언 아담스, 주다스 프리스트, 블랙 사바스 등이 무대에 섰다. 마지막 곡으로는 “Do They Know It‘s Christmas?”와 “We Are The World”가 각각 영국과 미국에서 연주됐다.

영국에선 약 7만2000명이, 미국에는 10만명 정도가 운집해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위성중계를 통해 150개국에서 19억명이 공연을 시청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당시 지구 인구의 약 4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공연을 함께 본 것이다.

공연을 중계한 BBC는 방송 내내 에티오피아를 돕기 위한 성금을 내는 방법을 안내했다. 또한 겔도프가 욕설을 섞어가며 성금을 독려하는 모습이 전파를 탄 효과로 총 1억5000만달러 이상의 기금이 만들어졌다.

공연 전까지만 해도 뮤지션들을 활용한 기금 모금 이벤트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고, 라이브 에이드 이후 유명인을 내세운 모금 행사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논란도 있었다. 1986년 음악 전문지 스핀은 라이브 에이드 기금 일부가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군사정부로 흘러가 기아 구제가 아닌 용도로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2014년 영국 BBC도 기금 일부가 티그라얀 해방전선의 무기 구입에 사용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라이브 에이드가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냈고, 이로 인해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가 본격화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전체의 극빈곤율은 1996년 60%에서 2011년에는 47%로 낮아졌다. 에티오피아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10% 넘는 성장률을 보이며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 당시와 비교해보면 이같은 변화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밥 겔도프. (BBC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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