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종수기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신중하면서도 짧게짧게 핵심을 언급하는 특유의 화법을 보였다. 때로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고, 때로는 겸손과 절제의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특유의 위기의식을 강하게 역설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이 1년8개월여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창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 전 회장이 9일(현지시각)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가전전시회(CES 2010)를 찾았다.
지난 2008년 4월 삼성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공식자리 참석은 처음이다.
이날 이 회장의 발언과 행보를 종합해보면 제품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삼성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 긴장감과 위기의식, 국민과 기업, 정부가 한 길을 걸어갈 때 뜻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삼위일체 철학 등이 잘 나타난다.
◇세심한 관찰력, 그리고 자신감
이 전 회장은 이날 삼성전자 ID카드를 목에 건 채 최지성 삼성전자(005930) 사장 등과 함께 전시장을 돌며 세계 IT 트렌드를 점검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한 번도 CES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삼성전자 부스에서 이 전 회장은 삼성 LED TV의 금속 테두리가 어린이 안전을 해칠 가능성을 지적했다. 프린터 매장에서는 "작고 가볍고 성능이 좋아야 한다"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경쟁력이 삐끗할 수 있다"고 말했다. 퍼스널 프로젝터에 대해선 두께를 5분의 1 이하로 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소니 부스에서는 3D 안경을 써본 뒤 "안경은 여기(안경다리)가 편해야 한다"며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무테안경을 꺼내 수행하던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TV를 보면서도 화질이나 색감에 앞서 안전과 편의성 등을 꼼꼼히 따지는 이 회장의 관찰력이 엿보인다.
일본업체들에 대해선 "겁은 안나지만, 신경은 써야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기초와 디자인 등에서 앞서있다고도 표현했다. 지난 2003년~2004년 일본의 부활 가능성을 언급하며 위기의식을 가지라고 주문하던 시절과는 좀 달라진 모습이다.
일본의 큰 전자회사 10개보다 삼성전자가 이익을 더 많이 낸다고도 말했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과 신뢰를 가지는 모습이다.
◇빠지지 않는 특유의 위기의식
그러나 이 회장 특유의 위기의식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10년전 삼성은 지금의 5분의 1의 크기로, 구멍가게와 같았다"며 "까딱 잘못하면 앞으로 구멍가게가 된다"고 말했다.
미래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고 자주 말했던 위기의식을 여전히 갖고 있는듯했다.
삼성전자의 신수종 사업에 대해서는 "아직 턱도 없다"고 표현했다. 현재에 자만하지 말라는 뜻이다.
기업경영에 대한 부담도 언급했다. 일본의 10개 전자회사보다 이익이 더 많다는 사실이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력 유지, 기업위상 유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확실한 것은 기업 정부 국민이 한길로 가야하는 것
이 전 회장은 이날 경영복귀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멀었다"라고 짧게 답했다. 경영복귀 의사는 있지만, 아직은 사회적 분위기나 여건 등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자식들의 경영수업에 대해서는 "아직 더 배워야 한다"며 "내가 (전시회장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이 아직 어린애"라고 언급했다. 이 전 회장은 이부진·이서현 전무 등 두 딸의 손을 잡고 전시회장에 입장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화두가 있냐는 질문에 이 전 회장은 "사회 각 분야가 정신을 차리고 활동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업을 포함해 사회 각 분야가 국내외에서 자기위치를 지키고 가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역시 "국민과 정부 모두 힘을 합쳐 열심히 뛰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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