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넘어갔다!`
대공황 이후 세계경제가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는 2008년 중에서도 3월14일에서 16일로 이어지는 주말은 특히나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법한 날이다.
골리앗 5인방이 줄줄이 무너지는 전례없는 월가발(發) 비극의 서곡이자,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거대 담론까지 불러온 금융위기와 정부의 본격적 시장개입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과 세계대전도 꿋꿋이 견뎌 낸 85년 역사의 거대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가 순식간에 유명을 달리했다. 느닷없고 갑작스런 파산은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 싹은 이미 오래전에 심겼고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역사는 자본주의의 교만함을 단죄했다. `위험을 완전히 헤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허상이었고 착각의 대가는 컸다. 당시 시작된 미국 정부의 개입은 그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고, 전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 베어스턴스의 말로..긴박했던 파산전야
베어스턴스는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에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재무·수익구조를 자랑해왔다. 2005~2007년 포천지 선정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들`로 꼽힌 존경받는 IB였으며, `베어스턴스 모닝뷰`는 월가 참여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는 정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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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뢰받던 듬직한 곰이 하루 아침에 쓰러지며 세계 금융업체 연쇄부도의 방아쇠가 됐다. 작년 여름 2개 산하 헤지펀드 파산위기로 불거진 고비를 잘 넘긴 듯 보였지만 수면 아래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3월들어 월가에서는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유럽계 은행들을 중심으로 베어스턴스에 추가 증거금(마진콜)을 요구했다는 소문 등이었다.
막후에서 소문 수습에 바빴던 경영진은 3월10일 "우리는 루머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순간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위기는 단순한 루머가 아닌 무시무시한 현실이 됐다.
경영진의 입을 통해 `루머`가 언급되는 순간 투자가들은 `무엇인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판단은 공포를 불러왔고 루머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투자자와 대출 기관들의 이탈이 본격화됐다.
설상가상 한 주 전 베어스턴스가 한 주요 은행에 20억달러 단기 대출을 요청했다 거부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용이 마르기 시작했다`는 확실한 증거로 해석됐다.
11일 베어스턴스는 계속 유동성 위기를 부인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의 신용 파생상품 그룹은 이날 아침 헤지펀드 고객들에게 `더이상 베어스턴스 파생상품 딜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베어스턴스에 사형선고를 내린 셈. 거래비용이 급증했다. 베어스턴스의 1000만 달러 자산에 대한 CDS 비용은 한달전 35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로 치솟았고 설상가상으로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베어스턴스에 대해 CDS를 발행하지 않았다.
다른 헤지펀드를 비롯한 고객들이 골드만삭스에 이어 베어스턴스를 떠나기 시작했다. 12일에도 CEO인 앨런 슈와르츠는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유동성 문제에 대해 어떠한 압박도 없다"고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마디로 '경영진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시장은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시장의 쏠림현상`으로 유동성이 물밀 듯 빠져나가니 없던 위기도 생길 판.
13일 베어스턴스의 위기 상황이 언론에 보도됐다. 앨런 슈워츠는 금융기관 대표들을 만나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면서도 경영진은 공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
결국 14일 이후 베어스턴스는 JP모간으로 인수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편 월가에서는 베어스턴스가 과거 `독한 투자전략`을 통해 파멸을 좌초했다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한다. 1998년 LTCM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자금을 빼내 몰락을 부추긴 베어스턴스식 투자법이 그간 월가 동료들로 부터 단단히 미움을 샀고, 결국 베어스턴스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식의 해석이다.
◇ `리스크는 죽지 않는다..다만 전이될 뿐`
근거없는 루머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시장의 경박함이 베어스턴스의 죽음을 앞당겼을 수는 있지만, 베어스턴스가 위험한 상황에 빠져있다는 소문은 단순한 루머가 아니었다. 베어스턴스의 종말은 ▲서브프라임 부실 ▲위험관리 실패 ▲무리한 레버리지(차입거래)가 빚어낸 하모니다.
베어스턴스는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갑작스레 등장한 `스타`가 아니라 오랜기간 꾸준히 성장해 온 기업이다. MBA와 컨설턴트보다는 배짱좋은 젊은이를 영입해 자기 사람으로 키워 공격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를 해왔고, 그만큼 위험 관리 능력에도 자신을 가져왔다. 임직원 보수도 월가의 다른 IB보다 적었으나 그에 반해 임직원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안정적인 IB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렇듯 착실한 베어스턴스는 외신 등에 따르면 여느 IB들보다도 모기지저당증권(MBS)을 비롯한 문제성 자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위험분산`이라는 투자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MBS와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에 대거 투자해 위험을 좌초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부실이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에 자신했던 위험 관리 능력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 했다.
2007년 11월말 현재 베어스턴스는 1조8500억달러 규모의 상장된 선물옵션을 포함해 13조4000억달러 규모의 파생상품 거래에 관계돼 있었다. 하루 아침에 엄청난 빚만 남길 수 있는 위험도 높은 투자들이 상당수였다.
뿐만 아니라 자본금 111억달러가 3950억달러의 자산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상태로 레버리지율이 35.5배에 달했다. 일각에서 베어스턴스의 진짜 문제는 투자처의 위험성보다 과도한 레버리지 이용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택시장 위축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구멍이 생기자 이를 기초자산으로 만들어진 MBS와 CDO 등의 파생상품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베어스턴스는 CDO와 MBS 등에 투자 경험이 많지 않아 적절한 프라이싱을 할 능력이 없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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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금융기법으로 위험을 제대로 헤지하는 우수한 금융상품을 만들었다고 확신했지만, 예상치 못한 전례없는 부동산 한파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위험은 제거된 것이 아니라 전이됐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확산된 것이다.
책임을 게을리 한 감독 당국도 위기에 일조했다. 작년 여름 베어스턴스에서 `산하 헤지펀드 도산위기`라는 적신호가 포착됐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IB들의 과도한 레버리지를 결코 규제하지 않았다.
이 같은 요소들의 상호 작용 속에 작년 1월 주당 171달러까지 올랐던 베어스턴스의 주가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JP모간체이스가 인수 시도를 개시할 초기에는 주당 2달러라는 굴욕적인 인수가격이 논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노한 주주들의 노력 덕에 베어스턴스의 몸값은 그나마 주당 10달러, 11억달러로 올라갔다. 당시 장부가의 5%이자 보유한 건물 시가 수준 밖에 안되는 규모였다. 지난 5월30일 JP모간은 베어스턴스 인수작업을 마무리지었고, 그렇게 85년 역사의 IB가 사라졌다.
◇ 美연준은 `새로움`을 택했다
3월은 위기 뿐 아니라 그 해법의 측면에서도 일종의 `전환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당초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유동성 증감을 `유도`해왔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자금투입`이라는 직접적인 해법을 내놓기 시작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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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11일에는 새로운 공개시장조작방식인 `Term Securities Lending Facility(TSLF)`를 도입해 정부 채권 공식 딜러인 `프라이머리 딜러(PD)` 들에게 2000억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키로 했다. PD들은 보유하고 있는 MBS를 담보로 맡기고 국채를 받게됐다.
16일에는 연준이 재할인율을 0.25% 인하하면서 PD들이 대출을 받기위해 제시하는 담보의 범위를 확대해 유동성 공급을 더 늘렸으며 JP모간체이스의 베어스턴스 인수를 중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상황을 지적하며 17일이 신용디폴트스왑(CDS) 시장에 극적인 반전이 이뤄진 날로 금융권 연쇄부도에 대한 우려가 크게 줄었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미국 정부의 시장개입은 그 이후에 더 커지고 강해져야 했다. 페니메이와 프레디맥, AIG 등을 잇따라 살려야했고, 7000억달러 규모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를 만들어 크고 작은 금융업체들을 구제해야 했다. 논란이 많았던 자동차 빅3도 결국 정부의 도움에 사망선고는 면한 상황이다.
이후 `수술`격인 정부 개입을 통한 위기 대처법은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각 국 중앙은행들이 이례적으로 공조해 금리인하라는 전통적인 처방전을 내린 것은 물론, 현재까지 은행 유동성 공급과 주요 산업 지원 등이 이어지고 있다. 그 거대한 흐름의 시작에는 3월 그리고 베어스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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