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도심에서 자연을 만나다..랭글러 루비콘 파워탑

남현수 기자I 2019.04.23 08:00:00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남현수 기자= FCA코리아는 지난 17일 지프를 대표하는 세 가지 모델을 선보였다. 랭글러(JL) 2도어, 파워탑, 오버랜드 모델이다. 이로써 국내 판매되는 랭글러는 총 6가지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시승은 서울의 가장 중심부 광화문, 그것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됐다. 오프로드의 최강자로 불리는 지프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마치 등산복 입고 서울 한복판을 누비는 느낌이랄까!

지프와 어울리지 않는 행사 장소에 대한 의문은 이내 풀렸다. 지프가 이번에 공개한 오버랜드와 파워탑은 오프로드에 특화한 여타 랭글러보다 도심형 SUV에 가깝다. 오버랜드는 랭글러 라인업 중 도심형 SUV의 역할을 맡고 있던 사하라를 대체한다. 더불어 전동식 소프트탑을 적용해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넘나드는 파워탑 모델은 랭글러의 이미지 변신을 위한 주축 모델이다.

지난해 8월 국내 출시한 랭글러 JL은 오프로드 특성을 살려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등장했다. 이번에 출시하는 랭글러 모델은 도심형 SUV를 지향했지만 기본기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예상을 뒤엎고 파워탑 모델은 세종문화회관 야외 계단을 타고 오르면서 오프로드 성능을 뽐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도심형 SUV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됨을 입었지만 전통은 잃지 않겠다는 지프의 확고한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섭렵할 수 있는 파워탑 모델로 맑게 갠 하늘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컨버터블 겸용이다. 스펙타클한 오프로드 시승을 기대했지만 지프가 마련한 코스는 도심과 자동차 전용도로, 와인딩 코스가 적절하게 섞여있었다. 이전 모델보다 개선된 '온로드 주행 실력을 경험해보라'는 지프의 생각이 느껴진다.

처음으로 마주한 랭글러 루비콘 파워탑은 강렬한 원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채색이 가득한 도심에서의 루비콘은 그 존재감이 뚜렷하다. 점심시간 건물 밖으로 우루루 쏟아져 나온 반듯한 직장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연신 사진 세례다. 입고 있는 정장을 벗어 던지고 당장이라도 근교로 드라이브를 떠나라는 유혹을 던진다. 파워탑 모델의 외관은 하드탑 대신 전동식 소프트탑이 적용된 게 가장 큰 특징으로 기존 랭글러 루비콘과 차이는 없다. 7슬롯 그릴과 LED가 박혀있는 동그란 해드램프, 그 옆으로 자리잡은 가로형 주간주행등 모두 동일하다. 측면에는 지프 특유의 사다리꼴 형태의 휠하우스가 눈을 사로잡는다.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오버행을 극단적으로 줄여 휠베이스가 무려 3010mm에 달한다. 후면부는 전통적인 랭글러에서 볼 수 있는 사각형 형태의 테일램프가 자리를 잡았다. 비상 상황을 위한 스페어타이어도 준비됐다.

랭글러 루비콘 파워탑 모델의 백미는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실내다. 센터페시아 디자인이나 구성 모두 기존 랭글러 루비콘과 동일하다. 반응속도와 터치감이 좋은 8.4인치 유커넥트 센터 디스플레이와 계기반은 시인성과 정보전달력이 좋다. 1열 시트에는 열선기능을 내장했다. 스티어링휠에도 열선이 장착돼 추운 겨울 운전자의 손을 녹여준다. 전동식 소프트탑이 적용된 만큼 탑을 열기 위해 렌치를 돌리고 들어올리는 수고로움이 필요 없다. 원터치 방식 버튼만 누르면 최고 시속 100km에서도 20초면 2열까지 소프트톱이 열린다. 3m가 넘는 휠베이스는 건장한 성인 남자가 앉기에 넉넉하다이다. 다만 방석 부분이 짧은 것은 장거리 주행에서 흠이 될 수 있겠다. 트렁크 공간도 꽤나 넓다. 오지 캠핑을 가기 위한 장비를 아무렇게나 내 던져도 얼마든지 수용 가능해 보이는 관대한 크기다.

사실 랭글러 이전 모델인 JK는 일상 주행에서 타고 다니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3.6L V6 가솔린 엔진은 연료 효율이 떨어지고 편의장비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혹자는 이런 점이 랭글러의 매력이라고 강요(?)하곤 했다. 물론 이전에도 랭글러가 재미있는 차임에는 분명했다. 단 오프로드에 한해서였다. 이제는 달라졌다. 2.0L 가솔린 터보엔진은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40.8kg.m를 발휘한다. 이전 3.6L 엔진보다 최고출력은 12마력 부족하지만 최대토크는 오히려 5.4kg.m가 좋아졌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연비다. 3.6L 가솔린 엔진은 17인치 휠 기준 복합연비가 6.5km/L에 불과했다. 그러나 2.0L 가솔린 엔진으로 다운사이징을 거치면서 같은 17인휠 기준 8.2km/L로 연료 효율이 대폭 개선됐다. 정차 시에 시동을 끄는 오토 스탑 앤 고 시스템도 한 몫 거든 것으로 보인다.

도심형 SUV로써 가능성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봤다. 랭글러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를 뜻하는 ‘가심비’ 단어와 잘 어울린다. 큰 차체에 독특한 외장색을 갖춘 랭글러를 보면 1억은 족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승한 랭글러 루비콘 파워탑 모델의 가격은 랭글러 중 가장 비싸지만 가격은 6190만원이다. 결코 저렴하지는 않지만 6천만원대에 1억원이 넘는 SUV를 타는 듯한 과시욕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매력은 주행 질감이다. 지난해 출시된 랭글러 신형 모델 중 기자가 시승해 본 모델은 총 3대다. 루비콘 하이, 사하라, 파워탑 모델이다. 극단적인 오프로드를 위한 세미 튜닝을 마친채 출고된 루비콘 하이 모델은 온로드 주행에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높은 차체에서 오는 불안함과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의 소음 그리고 작은 요철만 지나도 스티어링 휠을 잘 잡지 않으면 차체는 쉽게 기우뚱거린다. 그 다음에 시승한 모델은 도심형 SUV의 옷을 입은 사하라다. 도심형 SUV를 지향하는 만큼 사이드 스텝과 온로드 전용 타이어를 장착해 루비콘 모델에 비해 보다 편안했지만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파워탑 모델은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를 신었지만 전고는 도시형 SUV를 지향하는 오버랜드 모델보다 단 10mm 높은 1850mm다. 파워탑은 오프로드와 온로드의 경계선에 자리잡고 있다.

도심 주행에서 느껴 본 파워탑은 의외로 편안한 승차감을 보여줬다.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는 정체구간에서 오토 스탑 앤 고 시스템은 빛을 발한다. 파워탑 모델에는 서브우퍼를 포함한 총 9개의 알파인 스피커를 달았다.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유커넥트와 알파인 스피커의 조합은 막히는 도심 정체 구간도 특별한 추억의 장소로 만든다.

도심 구간을 빠져 나와 자유로, 외곽순환고속도로 주행에선 생각보다 폭발적인 가속감이 매력이다. 높은 차체와 프레임 바디에서 오는 특유의 거동이 느껴진다. 코너에서 무리한 진입은 삼가해야 한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선 제동 보조 시스템이 포함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풀 스피드 전방 추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이 빛을 발한다. 원하는 속도와 앞 차와의 간격을 설정하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스스로 가감속을 해낸다. 다만 스티어링 휠은 운전자가 직접 조작해야 한다. 장거리 주행에서 페달을 밟지 않는 것만으로도 운전 피로도는 절반 이상 줄어든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이 장착돼 주행 소음이 적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존 하드탑에 비해 소음은 더 커졌다. 소프트탑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소리와 하부에서 올라오는 타이어 소음이 꽤나 신경이 쓰인다. 차라리 소프트탑을 열고 바람을 만끽하는 편이 파워탑 모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2열의 머리 위까지 개방되는 소프트 탑 개방감이 상당하다. 마치 오픈카를 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랭글러는 빠르지 않아도, 막히는 도심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두가 편안함과 획일적인 소비를 추구할 때 랭글러 루비콘 파워탑은 특별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마련된 진흙 속 진주 같은 모델이다. 랭글러만의 독보적인 오프로드 성능에 더해 도심 주행 성능을 끌어 올린 파워탑 모델은 더 이상 세컨카가 아니다. 일상을 함께하면서 언제나 어느 곳으로도 떠날 수 있는 특별한 SUV다. 좀 더 편안해지고 세련된 도심형 SUV 사이에서 지프 랭글러는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무기로 끊임없이 시장을 선도한다. 평범한 SUV에 질렸다면 그리고 독특한 도심형 SUV를 찾는다면 지프 랭글러 루비콘 파워탑은 탁월한 선택지다.

한 줄 평

장점 : 빠르지 않지만 자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여기에 햇살은 덤이다!

단점 : 오디오를 뚫고 유입되는 소음, 조금 더 줄여줘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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