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멀티캐스팅과 겹치기 출연

박미애 기자I 2018.07.16 07:59:26
[이데일리 박미애 기자]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누리면서 어느 순간 무대에서 솔로 댄스 가수를 보기 어렵게 됐다. 몇몇 아이돌 그룹 멤버가 솔로 앨범을 낼 때도 있는데 그룹의 인기에 편승한 것으로 정체성을 따지자면 솔로 가수는 아니다. 요즘 가요계는 그룹 전성시대다.

스크린도 다르지 않다. 2004년 ‘실미도’가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천만영화에 등극한 후 블록버스터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제작비 100억원 시대를 지나서 200억원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면서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들이 떼로 나오는, 멀티 캐스팅을 선호한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생길 만큼 배우는 관객 동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가 여럿 등장하면 다양한 관객의 취향을 반영해 그만큼 홍보나 흥행에 유리한 지점을 점할 수 있어서다. 스크린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기라는 퍼스먼스를 펼치는 그룹 같다.

극장 최고 대목인 올여름에도 멀티캐스팅 영화가 포진했다. ‘신과 함께-인과 연’과 ‘공작’이 그 예다. 포스터에 이름을 올린 배우 한명 한명이 주연급이다. 관객의 입장에선 이런 배우들을 한 작품에서 본다는 거 자체가 흥미롭다.

문제는 멀티 캐스팅 때문에 한 배우가 다른 색깔의 작품에 동시에, 혹은 연이어 출연하는 ‘겹치기 출연’이 빈번해졌다는 데 있다. 조연은 말할 것도 없고 주연급에서도다. 지난 겨울 하정우의 작품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홍보에 애를 먹었는데 이번 여름에는 주지훈과 이성민의 영화들이 한 주 차이로 개봉한다. 개봉 시기는 배급사에서 정하는 것인 만큼 배우들을 탓할 수는 없겠으나, 영화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배우들의 입장은 난처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멀티캐스팅의 문제라기보다 원체 적은 배우 풀을 탓한다. 흥행에 목매는 업계의 분위기가 티켓파워를 가진 몇몇의 배우들 중심으로 즉 한정된 풀 안에서 캐스팅을 진행하고 그 결과가 겹치기 출연이라는 것이다. 배우 풀이 적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잇단 겹치기 출연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한 배우가 늘 흥행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무명 배우가 스타가 되듯 흙 속에서도 진주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계가 배우 풀을 늘리기 위한 캐스팅 프로세스를 재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미스터 션샤인’에서 반짝이는 김태리 같은 원석을 또 발굴해낼 수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