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군은 7세기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고약광(高麗若光·일본 이름 고마노잣코)가 세운 지역이다. 당시 고약광은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몰락될 위기에 처하자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일본으로 건너가 고마군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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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고마약광회·고마신사·히다카시 공동 주최로 열렸다. 세로 1.4m·가로 2m 장방형 모양의 기념비 중앙 윗부분에는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태양 안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가 새겨졌다.
그 아래에는 ‘서기 703년 4월 4일, 종5위하 고려 약광에게 왕성(王姓)을 내리다. 서기 716년 5월 16일 스루가(駿河), 가이(甲裴), 사가미(相模), 가즈사(上總),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 시모쓰케(下野) 7개국의 고려인 1천799명을 무사시(武藏)국에 이주시킨 게 고려군의 시초다’라고 쓰였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의미한다.
뒤편에는 기념비 건립을 위해 힘을 모은 회원들의 이름이 적혔다. 약 6년 전 10명도 채 안 되는 회원에서 시작한 고마약광회는 현재 회원 수가 223명에 달한다. 약광의 후손이자 고마신사의 제60대 궁사(宮司·신사의 최고 책임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를 비롯해 일본의 한국 도예가인 심수관의 후손 심일휘 선생, 지난달 별세한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京都)대 전 명예교수 등이 포함됐다.
고마약광회는 원래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출발했지만, 일본 내 유일하게 남은 고대 한국 마을인 고마군과 고마신사를 기리고자 지난 1년간 기념비 건립을 추진해 왔다. 고마약광회 김영진 이사장은 “약광의 업적을 기리고 양국 친선 나아가 동북아시아 친선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념행사와 기념비 건립을 추진했다”며 “재일교포는 물론 일본에서도 우호적 분위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