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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우리의 말춤 유전자가 빛을 봤다고? ‘강남스타일’을 문화 DNA로 몰고 가지 마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79)이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인기에 대한 지나친 민족주의적 해석을 경계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문화소통포럼 2013’에서 ‘공존과 소통을 위한 문화교류’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문화가 마치 내부적 DNA로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해 히틀러처럼 생물학적 우월성이나 열등성을 나누는 데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한류가 한국인만이 가능한 문화로 착각한다든지, 우리 민족에게 활을 잘 쏘는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식의 ‘문화의 유전자 결정론’ 식 접근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되레 반감을 사 외국인들에 문화저항이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 이 전 장관의 생각이다. 이어 그는 “인터넷으로 한류를 검색하면 함께 뜨는 검색어가 ‘소문화제국주의’라는 단어”라며 “문화를 편견과 집단주의 개념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국 록그룹 비틀즈가 세계적으로 인기였을 때 비틀즈가 ‘대영제국의 부활’이라고 내세웠다면 지금의 비틀즈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업계와 학계도 지나친 ‘한류’의 우상화를 우려했다. 손지애 아리랑 국제방송 사장은 “해외 시청자 반응을 조사해보니 한류의 아시아 호응도는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말레이시아·미얀마·베트남·인도네시아가 심한데 ‘문화제국주의’ 측면이 적지 않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손 사장은 이를 두고 “교류가 이뤄지지 않으면 문화는 장기적으로 힘을 잃는다”며 “문화전파만큼 타문화 수용에 힘을 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2011년 프랑스주재한국문화원장을 지낸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파리에서 ‘SM 월드투어’ 공연을 기획했는데 프랑스인들이 싫어하는 말이 한류더라”며 “그냥 주체적으로 K팝을 즐기고 있는데 이를 한류로 묶고 그 조류에 휩쓸려 좋아하고 있는 것이라는 시선을 불편해하더라”고 전했다.
이날 이 전 장관의 기조연설로 막을 올린 행사는 ‘세계와 문화교류를 통한 발전, 그 과제’와 ‘국제문화교류 활성화를 통한 창의성과 다양성 제고’를 큰 주제로 전문가 토론으로 진행됐다. 1부는 최 교수의 진행으로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 최태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2부에서는 정우탁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장과 박재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등이 발제자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