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분야 첫 국립박물관 15일 개관 서윤복 보스턴마라톤 메달 등 7만여 점 소장 김충배 관장 "간판 단다고 국립 아냐…'사람' 중심 박물관으로" 원로 체육인 구술 채록·국제 네트워크 강화 추진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독립운동가 전경무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미국에서 급거 귀국해 조선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정부조차 없던 시절, 런던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 승인을 따내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IOC를 설득한 그는 1947년 5월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IOC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려 미 군용기에 올랐지만, 비행기 추락으로 끝내 총회장에 당도하지는 못했다. 그를 대신해 이원순이 총회에 참석해 가입신청서를 냈고, 그해 6월 20일 IOC는 한국의 가입을 승인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단 한국 선수단이 처음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국이 올림픽 출전국이 되기까지 역사를 담은 국립스포츠박물관 영상물 (사진=손의연기자)
런던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당시 올림픽후원회는 전경무의 얼굴이 새겨진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 ‘제14회 런던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했다. 선수단 경비조차 복권을 팔아 마련해야 했던 나라는 80여 년 만에 스포츠 강국 반열에 올랐다. 한국은 △19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차례로 개최하며 이탈리아, 독일, 일본, 프랑스에 이어 세계 5번째로 ‘메가 스포츠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 도전과 환희의 역사를 한자리에 모은 국립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제14회 런던올림픽 후원권. 현재 국립스포츠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사진=국가유산청)
◇韓스포츠 역사 총망라…스포츠 분야 첫 국립박물관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개관한 국립스포츠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이 조성한 스포츠 분야 최초의 국립박물관이다. 국내외에 흩어진 스포츠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하고, 이를 전시·교육·연구에 활용하는 거점 역할을 맡는다. 박물관은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로, 소장 자료는 7만여 점이다. 김충배 국립스포츠박물관장은 “스포츠 선수와 가족, 기관·산업 관계자, 기자 등의 기부 릴레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많은 전시 자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스포츠박물관에 전시된 굴렁쇠소년 조형물 (사진=연합뉴스)
첫 상설전은 한국의 스포츠 역사를 돌아보는 내용이다. ‘우리가 만들어 온 K스포츠’ 전시는 엘리트 스포츠 육성 정책의 진행 과정과 선수들의 결실, 응원 문화 등을 망라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쓴 월계관, 1947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서윤복이 받은 우승 메달, 한국 축구의 개척자 김용식의 축구화, 한국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의 경기복, 김연아의 스케이트부츠 등을 전시했다. ‘위대한 도약:1988’ 전시에서는 1988 서울올림픽 성화봉과 개회식 굴렁쇠 등을 실물로 볼 수 있다.
기획전으로는 ‘박지성, 태극전사의 심장’(~내년 4월 30일)이 진행 중이다. 박지성의 유니폼, 축구화, 인터뷰 영상 등으로 구성했다. 김 관장은 “앞으로도 스포츠 스타를 주제로 아카이브전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IOC 박물관 순회전인 ‘레츠 무브:겟 액티브’에선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신체활동 체험을 제공해 균형감각, 유연성, 지구력, 협응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박지성, 태극전사의 심장' (사진=연합뉴스)
◇김충배 관장 “간판 단다고 국립 아냐…사람 중심 박물관으로”
지난 7월 부임한 김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박물관 문화재특화부장, 허준박물관장 등을 지냈다. 김 관장은 스포츠계 원로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받았다. 그는 “유물을 전시하지만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첫 대형 기획전의 주제는 야구가 될 전망이다. 김 관장은 “초기 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야구는 이후 다양한 프로스포츠 발달의 원동력이 됐다”면서 “숫자의 게임인 야구의 기록을 시각적으로 풀어 함성 이면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공’이나 ‘블레이드’(날)처럼 하나의 사물을 철학·과학·역사로 확장하는 전시도 구상 중이다. 그는 “예를 들면 고종이 사용하던 당구대(국립고궁박물관 소장)도 스포츠와 연관이 있다”며 “스포츠라는 세 글자에 갇히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고 했다.
김 관장은 스포츠유산을 ‘세대를 잇는 매개’라고 정의했다. 그는 “휴대폰에 매몰돼 세대 간 대화가 줄어들고 있지만, 스포츠는 함께 응원하고 함께 기뻐하게 만든다”며 “윗세대가 왜 그 순간에 기뻐했는지 지금 세대가 묻고, 지금 세대의 환호를 윗세대가 느낄 수 있다면 새로운 공감대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박물관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국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