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14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1406조원에 달한다.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로 증가세가 다소 주춤해졌지만 2012년 905조원에서 5년 사이 501조원(55.4%)이나 늘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72.4%를 크게 웃돈다.
부채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이른바 ‘취약차주’의 가계부채액이 2015년 73조 5000억원에서 80조 4000억원으로 늘었다.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고위험가구 부채도 46조 4000억원에서 62조원으로 증가했다. 대부분 금리가 높은 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위험도가 큰 대출이라고 한다. ‘8·2 대책’ 등 대출규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로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비춰 정부 움직임은 느슨해 보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가계부채 급증세가 성장 등 거시경제 정책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가계부채가 경제 전반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했다. 종합대책 발표를 당초 8월에서 9월로, 다시 다음달로 늦춘 것이 이처럼 안이한 인식 때문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물론 정부도 고민이 없지 않을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지난 2분기 0.6%에 그치는 등 최근의 경기지표 흐름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여기에 북핵 리스크와 중국의 사드보복 등 대외 악재도 커지고 있다. 이런 때 대출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이게 되면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론을 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가계부채는 더 이상 놔둘 수 없는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다. 상황 논리로 접근해 미적거리다 화를 더 키울 수 있다. 당장의 경기 위축을 우려해 대증 처방으로 대처하다간 자칫 경제 전체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비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되 미봉이 아닌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통화정책도 정부와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다음달 발표될 대책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