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출신 기업인, '물고기 필통'으로 韓·中·日 사로잡다

채상우 기자I 2016.10.27 07:00:00

전광일 몬스터커머스 대표 인터뷰
워커힐호텔 1급 조리사로 10년 근무
물고기필통, 韓·日·中에서 연속 히트
中 ''짝퉁'' 제품 위기, 제품 다양화·품질 경쟁력으로 승부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고등어랑 광어 한 마리씩 주세요.” 손님의 주문에 주인은 “네 싱싱한 놈으로 한 마리 드리겠습니다.” 라고 힘찬 목소리로 답한다. 수산시장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아니다. 거래가 오간 곳은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문구박람회의 한 부스에서다. 주인이 판 건 진짜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와 똑같은 모습을 한 필통이다.

열악한 국내 문구시장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승부를 거는 기업인이 있다. 물고기 필통으로 일본과 중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전광일(34·사진) 몬스터커머스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전 대표가 만든 물고기 필통은 고등어, 광어, 우럭, 참돔 등 우리의 식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다. 비슷한 수준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언뜻 보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모습이 흡사하다. 필통을 열면 회를 떠 놓은 듯 물고기의 속살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전 대표가 만든 물고기 필통은 모두 전 대표가 직접 낚시로 잡거나 수산시장에서 사온 물고기를 모델로 했다. 전 대표는 “물고기를 직접 잡고 해체를 해봐야 물고기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며 “그렇게 해야 실물과 똑같은 형태의 물고기 필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전 대표가 만든 물고기 필통은 총 12종이다.

물고기 필통을 개발하기 전 그는 요리사로 활동했다. 워커힐호텔에서 1급 조리사로 10년 동안 근무하던 전 대표는 건강 악화로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자신만의 사업을 계획했다. 평소 낚시가 취미였던 전 대표는 물고기를 낚아 회를 치다가 문득 ‘물고기로 필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013년 몬스터커머스를 설립하고 동대문 상인들을 찾아가 가장 적합한 원단을 찾고 봉재를 하는 방법, 지퍼를 다는 방법 등을 배웠다. 아직 몬스터커머스는 작은 회사지만 독특한 제품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몬스터커머스의 매출액은 5억원이다.

전광일 몬스터커머스 대표가 그가 만든 물고기필통을 집어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몬스터커머스
처음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전 대표는 “인쇄공장을 운영하는 작은 아버지를 찾아가 필통을 만들게 고등어 모양 프리팅 500장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야기를 듣자 마자 작은 아버지는 정신 차리라며 나를 나무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위의 불안감과 달리 사업은 시작과 함께 대박 조짐을 보였다. 처음 생산한 고등어 모양 필통 500개는 일주일만에 소셜커머스 쿠팡을 통해 완판됐다. 1만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모양에 소비자는 관심을 가졌다. 그 이후로 낸 광어, 우럭 필통 역시 시장에 내놓는 대로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물고기 필통은 소셜네트워크(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고기 필통의 인기가 한국에서 조금씩 싹트기 시작할 무렵 일본 수입유통회사 케이오미라클에서 연락이 왔다. 일본 최대 온라인 유통회사인 라쿠텐에서 물건을 팔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아이디어 문구 상품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과연 인기를 끌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일단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1만개 이상의 물고기 필통이 팔리며 라쿠텐 굿아이디어 제품으로 선정돼고 지난해에는 일본 홈센터쇼에서 아이디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2015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 동안 1만개의 물고기 필통이 중국에서 팔렸다.

특이한 것은 나라마다 인기 있는 필통이 다른데 주로 해당 나라에서 많이 먹는 물고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등어와 광어 모양의 필통이 가장 잘 팔리며 일본에서는 참돔과 돌돔, 감성돔 필통이 인기다. 중국인들은 오직 잉어 제품만 구입한다고 한다.

승승장구를 기대하던 전 대표는 최근 큰 고민에 빠졌다. 중국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의 모조품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중국과 일본시장에서 판매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상품권 등록과 디자인 등록을 완료하고 중국에서도 디자인 등록 절차를 밟고 있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으로 전 대표는 예상한다.

전 대표는 중국의 저가 모조품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제품의 다양화와 고급화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격 경쟁력에서 이기기 힘들다면 품질에서 확실히 차이를 두겠다”며 “품질 강화와 차별화를 위해 원단부터 지퍼, 프린팅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아울러 필통뿐 아니라 모든 사무용품을 생물체의 형태로 만드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그는 “세상에 없는 특별한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며 “지금은 물고기에 머물지만 그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독특한 디자인 상품을 만드는 기업이 되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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