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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달라진 것은 2012년 19대 국회 이후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다. 20대 국회 막바지 패스트트랙 충돌사태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극단적인 물리적 충돌은 사라졌다. 이는 국회 선진화법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본회의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운영 원리는 다수결이지만 소수 정당의 의견도 어느 정도 배려했다. 유신헌법 통과 이후 1973년 이후 사라졌던 필리버스터를 40년 만에 부활시킨 것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필리버스터의 시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64년 6대 국회 시절 자유민주당 소속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5시간 19분간 원고도 없이 즉흥 발언에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인상적인 필리버스터 이후 전국구 소장파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정치는 물리적 폭력이 아닌 말과 글로 하는 전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필리버스터의 모범사례였다.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19대 국회 막바지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필리버스터가 시행됐다. 8일간 이어진 필리버스터는 무려 38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20·21·22대 국회에서도 수많은 여야 의원들이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필리버스터 스타 의원이 탄생하기도 했다. ‘법안 통과’라는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을 순 없었지만 민주주의의 전제는 소수 의견 존중이라는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때로는 무제한 반대토론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는 효과도 적지 않았다.
다만 날이 갈수록 필리버스터는 형해화됐다. 내용적으로 뜯어봐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무의미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본회의 표결 또는 안건 심사 때 재적 과반 출석이 필수적인 것과는 달리 필리버스터 때에는 파리만 날린다. 때로는 졸거나 숙면을 취하는 모습으로 망신을 당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에 집착하기도 했다. 필리버스터는 한마디로 쟁점 법안 처리 과정에서 매번 되풀이되는 요식적인 절차였다. 여야 지도부 역시 ‘통과의례’로 여길 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최근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파급력은 없었다. 그저 그런 또 한 번의 통과의례였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장 의석은 예외 없이 텅텅 비었다. 국회방송 시청률 또한 애국가 시청률과 다를 바 없었다는 후문이다.
차라리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등판했으면 어땠을까. 한동훈 의원은 검사와 법무장관 출신으로 보완수사권 폐지의 문제점을 가장 강력하게 지적해온 이슈 메이커였다. 화제성 면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 의사과에 필리버스터 신청서를 제출했다”면서도 “국회 의사일정은 원내 교섭단체 주도로 결정되는 만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필리버스터 배제는 아쉽다”고 밝혔다. 단순히 한 의원의 필리버스터 배제 문제만이 아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보수는 지리멸렬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만일 한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성사됐다면 장동혁, 한동훈, 이준석으로 사분오열된 보수의 물밑통합을 위한 단초가 될 수 있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의 의사전략과 정무감각 부재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아울러 필리버스터 제도 변화도 향후 모색해볼 만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1∼2시 또는 텅텅 빈 본회의장 필리버스터를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 대선 TV토론 형식을 벤치마킹해서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필리버스터 100분 생중계를 배치하면 어떨까. 어렵다면 여야의 대표주자가 본회의장 일대일 맞대결 토론을 펼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물론 절대 다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제도 개선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국회 선진화법 도입은 2011년 과반 다수 의석을 보유한 집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양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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