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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5일(현지시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살만 사우디아리비아 국왕,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등 주변 4개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여부에 대한 결정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건 매우 예민한 문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자기들의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무단으로 점유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셈이 된다.
이는 미국 정부의 그간의 외교정책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부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수도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협상의 문제이지, 미국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뒤집었다. 근본적으로 타협이 불가능한 종교 문제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개입한 셈이다.
아랍권과 이슬람 국가들은 즉각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한 4개국 지도자들은 “일방적 결정을 반대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아랍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도 “극단주의에 불붙이고 폭력사태를 부를 것”이라며 우려했다.
사에브 에레카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미국의 입장변화는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그 지역에서 행한 미국의 평화 노력에 자살골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는 미국이 대사관을 옮길 경우 새로운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반대 견해를 표시했다. 주미 사우디 대사인 칼리드 빈살만 왕자는 성명에서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한 미국의 발표는 어떤 것이든 그 지역의 긴장을 높이고 평화 프로세스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동맹인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예루살렘의 역사·법적 지위를 유지하고, 그 지위를 바꾸려는 결정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사회도 미국의 일방적 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뚜렷하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예루살렘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당사자의 직접 협상을 통해 해결돼야만 하는 문제라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