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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톡톡아트]현대의 헤라

유경희 기자I 2012.09.19 09:17:32

자기인생이 없는 여자들, 반란을 일으키다!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헤라는 늘 사랑 때문에 고통 받는 여자였다. 동시에 그녀는 그 사랑을 지키려고 다른 여자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딱 한 남자 제우스 때문에! 헤라가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가 실연당했다는 스토리도 없고,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는 에피소드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자식들을 끔찍히 사랑했다는 얘기도 별로 들어보질 못했다. 그녀에게는 남편만이 중요했다. 딱 한번 제우스의 유혹에, 결혼해주지 않으면 동침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를 빼놓고는 헤라는 사랑의 주체가 돼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헤라의 삶은 바람난 제우스의 뒷조사에 온통 바쳐져 있다. 왜 그녀는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것일까?

헤라 캄파냐, 그리스 조각의 로만카피, 2세기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 신들의 제왕이었던 제우스마저 헤라를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온갖 폼을 잡고 다니지만, 실상은 엄처시하의 ‘찌질남’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헤라를 두고 제우스조차 두려워한, 질투심 많고 드세고 걸핏하면 싸움질을 하는 여신이라고 혹평했다. 그녀가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헤라의 눈을 피하기 위한 제우스의 변신능력은 나날이 깜찍하고 정교하게 발전해나갔다. 그런데 엄청난 제우스의 바람에도 헤라는 제우스를 압박하거나 힐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남편이 무슨 잘못이겠니! 잘못이라면 내 남편이 너무 멋진 오빠라는 것뿐인데! 우리 오빠 유혹한 니들이 잘못이지!” 헤라는 자기 남편을 감싸고, 모든 잘못을 유혹당한 제우스의 애첩들에게 돌리고, 파괴적인 복수의 칼날을 잔인하게 들이댄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여자들도 헤라의 지독한 질투와 복수에 대항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런 헤라는 그림 속에서 엄격하고 근엄한 여자로 묘사된다. 왕관이나 화려한 머리띠를 장식하고 홀을 들고 있으며, 자주 신조(神鳥)인 공작과 함께 등장한다. 그녀는 제우스와 그의 애인이 등장하는 많은 그림에서 구름에 휩싸인 모습으로 마치 하나의 배경 혹은 그림자처럼 드러난다. 그림에서처럼 헤라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미술사에서도 헤라가 단독상으로, 그러니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술작품은 많지 않다. 헤라가 모든 관계의 배후의 조종자여서 그랬을까? 알다시피 헤라는 자기 자식들이나 헤르메스를 시켜 남편을 감시하는 일을 시키고, 남편의 정부들과 아이들을 처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처럼 대부분 남자들이 예술가였던 시대에 헤라는 예술가-남자들에게 매혹적인 여성상이 아니었던만큼, 그림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늘 의심하고, 잔소리 심하고, 자기가 만났던 여자들을 응징하러 다니는 헤라에게 매력과 호기심을 느낄 남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파리스의 심판>을 보면 헤라는 남자 마음을 진정 모르는 것 같다. 얘긴즉슨,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이 거행됐을 때 여러 신들이 잔치에 초대됐으나 불화의 여신(헤라의 딸이라고 알려져 있는) 에리스만 제외됐다. 노한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쓰여 있는 황금 사과를 연회석에 던졌고, 아름다운 세 여신 아테나(미네르바), 헤라(주노), 아프로디테(비너스)가 서로 갖겠다고 다투게 된다. 누구를 선택해도 욕먹을 게 뻔하다고 느낀 제우스는 헤르메스로 하여금 프리기아의 목동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기도록 한다. 이 때 아테나는 지혜를, 헤라는 세계의 주권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각각 약속했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특별히 아시아를 통치할 왕권을 약속했다. 물론 황금사과는 미녀를 주겠다는 아프로디테에게 돌아갔다. 역시 사람을 유혹할 줄 아는 아프로디테! 유혹의 측면에서 헤라는 항상 한 수 아래다! 헤라는 진정 남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는 여자다. 따지고 보면 왕이 되면 얼마든지 원하는 여자를 취할 수 있을텐데 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택하느냐고 묻는 것은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질문이다. 이 에피소드는 한 남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 여자의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자가 세계를 제패하고 싶은 것도 사랑하는 한 여자를 위한 것이다. 헤라는 그 단순하고 강력한 진리를 잘 몰랐던 것일까?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2~33
이처럼 헤라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도, 미술사의 주요작품의 주인공도 되지 못했다. 현실 속의 헤라들은 또 어떤가? 사실, 현대사회에서 헤라 같은 여자들은 확실히 줄고 있는 것만큼 은 사실이다. 가정을 지키는 데만 전력투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취미생활은 물론 직업전선에서 남자를 능가하는 여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헤라처럼 바람난 남편 뒷조사하는 짓보다는, 맞바람으로 대응하는 여자들도 있다. 남편이 퇴직할 때를 기다려 퇴직금과 연금을 나누어가지는 조건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여자도 있다. 혹은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난 다음 정식이혼이든 한 지붕 두 가족의 별거든 자유를 선언하는 여자들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한편에선 여전히 헤라형 여자들은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 아직도 젊은 여성들은 몸값이 한창인 나이에 좋은 값에 팔려가길 원한다. 부모의 성화도 한몫 거들지만, 그녀들은 부모를 이겨낼 공력은 도저히 없어 보인다. 적령기를 넘긴 미혼의 헤라여성은 심지어 자신이 미완성이거나 인생의 실패작이라고 느끼기까지 한다. 어쨌거나 그녀들은 남성의 능력과 재산을 요구하고, ‘누구누구의 부인’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많은 ‘사‘자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 결혼시장에서 아직도 득세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것이 정말 자기의 진짜 욕망일까? 아니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자신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일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바로 ’나‘였으면 하고 바라는 것일까? 어떻게 얘기해도 인간에겐 고유한 욕망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되는 길은 너무나도 어려워 보인다.

루벤스, 헤라와 아르고스, 1611
이런 식으로 가다간 현대판 헤라들은 신화 속 헤라처럼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더욱이 신화 속 헤라가 거의 모든 여성들을 적으로 삼았고, 그런 까닭에 다른 여성들과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성동지들과 잘 지냈던 아테나, 아르테미스, 데메테르와 같은 여신들과는 달리, 헤라는 자식들을 제외하고는 진정한 동성의 동반자를 만들지 못했던 점은 좀 되새겨볼만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가족을 지키는 데만, 즉 가족이기주의에만 혼신을 다한 모든 여자의 딜레마일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관계지향적이다. 우리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도 모두 관계에서 나올만큼 관계를 만들고 소통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향 싼 종이에서 향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현대의 헤라들은 마치 신화 속 헤라가 많은 시간을 남편 감시와 애첩의 처벌에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자신이 관계 맺고 소통해야할 동지들을 잃어버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 현대의 헤라들이 반란을 시작했다.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울을 하나씩 허물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 비록 중산층 이상에 국한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각종 다양한 취미생활과 문화센터 인문학 강좌와 예술강좌에 몰려드는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비로소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인내와 희생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최선책은 아니라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녀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말한다. “욕망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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