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세금없는 富이전` 막을 묘수를 찾아라

최정희 기자I 2011.07.04 10:30:00

`법으로 잡을까 공시로 유도할까` 아이디어 백태
실효성 높고 논리적으로 탄탄한 장치 마련 골머리

[이데일리 최정희 황수연 기자] 재벌 총수가 자녀에게 `세금없이 부를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묘수를 찾아라. 정치권과 정부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재벌총수가, 자녀(또는 특수관계자)가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법인(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자녀회사가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회사는 부모회사와의 안정적 거래를 통해 노력을 안 해도 많은 이익을 내고, 나중에 상장을 통해 주식차익도 얻을 수 있게 된다.
 
겉보기엔 회사 간 거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녀에게 거대한 자산이 증여되는 것이다. `세금 없는 부의 이전`이 이뤄지는 셈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과세방안을 8월말 세제개편안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논리적으로 탄탄하지 않으면 소송만 남발될수도 있다. 백가쟁명식으로 제기되는 아이디어를 정밀 진단한다.
 
◇상속증여세법 적용案: 이론상 가능해도 `내부거래 규정` 힘들어
 
정부는 상속증여세(이하 상증세)를 과세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현행 상증세법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는 과세대상이다.
 
2004년 상증세가 포괄주의로 변경되면서 `타인의 기여`로 자산을 증가시키는 것에도 과세된다. 부모가 자산을 자녀에게 주지 않아도 부모의 도움으로 자녀의 자산이 불어났다면 과세가 가능하다.
 
세법상 과세대상인데도 세금이 없었던 이유는 뭘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세금계산이 기술적으로 어려워 구체적인 규정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과세의지는 `공정사회` 정책기조로 어느 때보다 강하다.
 
정부는 현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자녀회사의 주식가치가 증가하거나 영업권 평가이익이 증가했다면 모회사와의 내부거래 비중만큼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얼마만큼의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라고 봐야 할지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부거래 비중을 일괄 규정할 경우 대기업이 비용절감을 위해 설립하는 기업소모성자재(MRO)업체도 `일감 몰아주기`로 분류돼 MRO업체의 대주주는 상증세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 법인세법 적용案: 모회사만 책임·시장가격 기준 애매 `불합리`
 
그동안 법인세 부당행위계산부인은 일감 몰아주기를 과세하는 데 사용돼왔다. 다만 이는 모회사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일 뿐, 계열사엔 영향이 없다.
 
부당행위계산부인은 A회사가 특수관계자인 B회사와의 거래에서 시장가격보다 저가로 팔거나 고가로 매입해 A회사의 세금이 줄어들 경우 이를 부인하고 시가를 적용해 다시 법인세를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시가`에 대한 해석이 보는 시각마다 달라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실례로 현대차는 국세청이 글로비스와의 거래에서 물류비용을 시가와 다르게 적용했다는 이유 등으로 법인세 71억여원을 추가로 부과했지만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공시의무 강화案: 횟수 늘리고 범위 넓혀도 "실효성은 별로"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나라당과 정부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가 부당지원행위 또는 편법증여가 될 수 있다며 각종 규제대책에 합의했다. 다만 실효성은 물음표다.
 
당정은 대기업의 내부거래 공시대상(공정거래법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공시대상을 대기업의 동일인(지배주주)·친족 지분이 30%이상인 계열사에서 20% 이상인 계열사로 확대했다. 공시주기도 연 1회에서 4회(분기1회)로 늘렸다. 계열사와의 거래목적, 거래량도 적시하도록 했다.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공시의무 대상을 늘려봤자 217개사에서 245개사로 28개사(13%)밖에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시주기를 단축하는 것도 대기업들에겐 그리 큰 부담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상법개정안 활용案: 이사회 책임 강화 "독립성부터 해결해야"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상법 개정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눈길을 끈다. 상법 개정안은 대기업 총수가 자녀 등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손해를 보면서도 일감을 몰아줬다면 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만 독립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란 반론도 있다.
 
대기업이 주요사업을 수행할 때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그 승인으로 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이사도 책임을 지라는 취지다. 이 개정안은 2005년부터 6년간 논의된 끝에 4월 임시국회를 통과했다. 기업들의 거센 반발을 거치며 17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 재논의된 끝에 이룬 결실이다.
 
구승모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는 "일감 몰아주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생기기 때문에 쉽게 일감 몰아주기에 동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몇 가지 보완점이 지적된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배주주가 하는 사업을 이사회가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사회 구성원으로 외부 전문가들을 선임해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소액주주들의 소송여건이나 절차 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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