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사이의 내전인 ‘6·25전쟁’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이 참전해 국제전인 ‘한국전쟁’으로 비화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과 중국이 전략경쟁을 본격화하고 있어 한반도가 패권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불확실성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처럼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국가들 사이에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정전체제가 구조화함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복합갈등이 전면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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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개발의 논리를 한국전쟁 동안에 형성된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는다. 북한은 정전협정상 북미가 교전관계이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등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다시 말해 핵무기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남한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전체제를 유지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안보와 국익에 유리하다고 보고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 소극적이었다. 한국전쟁 중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한 이후 아직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정전체제가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체제와 정권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권력을 강화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장기집권을 꾀하기도 했다. 박정희시대 ‘유신체제’와 김일성시대 ‘유일체제’ 사이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대표적 사례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근원도 정전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통일 3원칙으로 합의한 그해 박정희는 10월 유신헌법을 채택해 대통령에게 ‘통일의무’를 부여하고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집중·강화해야 한다며 유신헌법을 채택했다. 김일성은 12월에 ‘주석제 헌법’을 채택하고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 구축을 본격화했다.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1987년 체제’가 수립되면서 남한에서 더 이상 남북 사이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할 필요는 사라졌다. 그러나 정전체제의 장기화는 남북한 주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적우(敵友) 논리에 기초한 이분법적 흑백논리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했다. 장관인사청문회에서 북한 ‘주적론’과 ‘위협론’이 맞서기도 했다. ‘친북좌파’란 용어는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정치적 수사다. 상대를 부정해야 자기정체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독선적 정의관’도 정전체제,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인식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이라는 본질문제를 외면하거나 뒤로 미루면 우리는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전협정 이후 72년의 지난 시간을 ‘역사-구조적’으로 살펴보고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는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용기와 의지를 다지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