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선형 이승현 기자] 회사원 김명은씨는 분통이 터졌다. 최근 은행창구를 갔다가 치매보험에 가입했는데, 결제수단을 카드로 변경하는 게 너무 어렵게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연말 소득공제 등을 고려하면 카드로 결제하는 게 유리하지만, 보험사쪽에선 자동이체가 불가능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매달 직접 사업부에 전화를 걸어서 카드번호를 불러주면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몇 개월 전화를 걸어보다 결국 김 씨는 포기했다. 은행 자동이체로 결제 수단을 바꿨다. 김 씨는 “보험료 납입일을 매월 체크 해 놓고 전화를 걸어서 결제해야 하는데,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버거롭다”고 푸념했다.
‘보험료 카드결제 의무화’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소비자 편익과 선택권 강화를 명목으로 보험료도 카드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지난 14일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대표발의) 등 11명이 발의한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다. 보험사가 소비자로부터 보험료를 납부받을 때 현금 또는 신용ㆍ직불ㆍ선불카드로 결제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개정안에는 벌칙조항에 납부를 거부할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사실상 보험료 카드결제를 강제하겠다는 의미다.
이정문 의원은 “보험사들의 신용카드 납부 제한은 소비자의 권익을 제한하고 신용카드 이용자를 차별하는 행위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보험료를 납부를 받을 때 카드 결제가 가능하게 하고, 카드 결제를 이유로 보험계약자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보험사에 대해 별도의 처벌 규정을 둬 소비자의 지불 결제 편의를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보험사들은 자신들 입맛에 맞게 보험료 카드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등 소멸성 보험과 일부 보장성보험에서만 카드결제를 허용해놓았다. 연금보험, 종신 등 저축성보험이나 장기보험, 방카슈랑스(은행 보험 판매) 등 오랜 기간 보험료를 내야하는 경우엔 직접적인 카드결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교보생명과 한화생명, 오렌지라이프 등 일부 보험사의 경우 카드사와 가맹점 계약을 맺지 않아 카드결제가 완전히 막혀 있다.
당연히 카드를 통해 보험료 납부 비율은 매우 낮다. 지난 상반기 말 기준으로 생명보험사의 총 보험료(16조1225억원) 중 카드납 비중은 4.5%에 불과했다. 손해보험사는 총 보험료(19조5380억원) 중 28.8% 정도로 조금 더 많다.
법안이 발의되자 보험사들은 ‘금융업계의 상황을 모르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적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10년 전에도 보험료 카드결제로 논란이 일은 바 있다”며 “당시에도 수수료율 부담과 소비자 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무산이 됐었는데, 해당 법안이 갑자기 또 튀어나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09년에도 보험료 카드결제 논란이 일은 바 있다. 당시 여신업법이 개정되면서 ‘카드결제 금지 항목에 보험료 항목을 넣느냐’를 두고 보험사와 카드사간에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보험업계는 ‘저축에 해당하는 보험을 카드로 납부하는 꼴’이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카드사는 ‘카드결제 및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이유로 들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보험료를 카드결제를 허용하되, 수수료 및 카드 결제 항목은 가맹점 계약 내용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는 절충안을 내놨다.
지난 2018년에도 금융감독원 주도로 관계된 각 협회와 업계 등으로 구성된 ‘보험료 카드납 확대 TF(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키며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금융당국은 두 번 모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보험사들은 수수료율 조정을 협상 조건으로 내건다. 수수료율이 획기적으로 낮아진다면 보험료 카드 결제를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보험사에 적용되는 카드 수수료율은 1.8~2.2% 수준으로 대형가맹점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다. 카드 수수료율이 유지된 채 카드결제 의무화가 이뤄질 경우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보험회사의 주장이다. 보험사는 1% 미만의 영세가맹점 수수료가 적정하다고 설명한다.
보험료 카드결제에 대해서는 금융당국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소비자에겐 편리한 변화지만, 무작정 보험사에 강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안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보험업계와 논의하고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다”며 “보험업계에서 말하는 수수료율 등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충분히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