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금융돋보기] 정치·관치금융이 부른 기업구조조정의 폐해

김동욱 기자I 2015.05.02 13:38:16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요즘 경남기업 이슈가 금융권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중견건설사인 경남기업이 지난 2013년 10월 3차 워크아웃을 거치는 과정에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고 성완종(사진) 경남기업 회장이 신분을 이용해 은행들이 특혜성 지원을 하도록 금융당국을 압박했다는 게 사안의 핵심입니다.

경제 논리대로 이뤄져야 할 워크아웃(기업 구조조정)이 정치와 당국의 입김에 휘둘리면서 모든 게 꼬였습니다. 경남기업은 지난해 3차 워크아웃 과정에서 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올해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금융회사와 협력업체, 개인투자자들이 떠안아야 할 손실 규모만 1조1000억원대로 추산됩니다. 경남기업은 자본 전액 잠식 상태에 빠져 지난달 15일 주식시장에서도 퇴출당했습니다. 지난해 경남기업이 가지고 있는 빚을 탕감해주는 대신 경남기업 주식(출자전환)을 대신 받았던 은행들은 상장폐지에 따른 주식가치 손실을 그대로 떠안게 됐습니다. 대략 이 손실만 1100억원 대입니다.

◇ 정치·관치에 흔들린 기업 구조조정

경남기업 사태는 무엇보다 기업 구조조정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시장 논리에 따라 제때 걸러졌어야 할 기업이 빠르게 정리되지 못하면서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기업을 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시장 논리에 따라 제때 정해졌더라면 제한된 자원이 부실기업으로 흘러들어 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기업 구조조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과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바로 워크아웃입니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단과 기업(채무자)이 서로 자율적인 협약에 따라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것입니다. 이 법은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영위기로 쓰러지는 기업이 많았는데요. 법원을 통한 구조조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구조조정 실효성이 낮았습니다. 법원에서 기업의 회생 여부를 결정(법원 주도의 구조조정)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면 금융회사들이 서로 협조해서 이 기업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기촉법 탄생으로 이어진 겁니다.

물론 이 방식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기업에 돈을 댄 금융회사들이 지원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하다 보니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건설업이나 조선업처럼 수주산업의 경우엔 채권자의 권리관계가 워낙 복잡해 지원방식을 조율하기가 더 쉽지 않았습니다. 톰보이란 의류회사는 워크아웃 실패 사례로 꼽힙니다. 이 회사는 지난 201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해 졸업했습니다. 법정관리 들어가기 전 주채권은행은 톰보이에 대한 시장의 부실징후 지적에도 투자 유치를 이유로 워크아웃을 거부했습니다. 톰보이는 결국 자금회수 부진 및 투자유치 실패로 부도가 났고 결국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합니다.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본 경남기업의 주요 공시. 경남기업은 지난해 2월3일 워크아웃 돌입을 알린 뒤 곧바로 채권 은행으부터 지원을 받는다. 전환사채 발행으로 902억원, 유상증자로 1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다. 당시 경남기업은 주식 할인없이 액면가(5000원) 그대로 사채를 발행한다. 이 과정에서 성완종 전 회장의 무상감자(주식소각)는 이뤄지지 않았다.
◇ 도 넘은 당국의 워크아웃 개입…“잘못된 선례 남겨”

이처럼 워크아웃 시 채권 은행 간 이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암묵적으로 금융당국이 개입합니다. 그동안 관례처럼 통했습니다. 당국이 조용히 당사자들을 불러 분쟁을 조정해준 거죠. 그러나 기촉법엔 당국의 개입을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의사결정 역시 부실기업의 채권금융기관으로 구성된 협의회에서 정합니다. 여기서 분쟁이 생기면 민간위원으로 꾸려진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합니다. 조정위원회에서도 금융당국은 빠져 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금감원은 오직 어디를 주채권은행으로 할 것인지와 워크아웃 전까지 은행들의 채권행사를 유예하도록 요청하는 권리만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암묵적으로 금감원의 개입을 허용하긴 했지만 경남기업 사건에선 이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앞서 감사원은 금감원이 경남기업의 세 번째 워크아웃에 특혜를 주도록 채권단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같은 압력에 채권단이 결국 경남기업에 대해 ‘무상 감자 없는 출자전환’을 결정했다는 게 감사원의 감사 결과입니다. 지난해 2월 27일 경남기업은 902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는 내용의 주요사항 보고서를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렸습니다. 채권은행들은 경남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이 주식을 할인 없이 액면가(5000원)에 그대로 삽니다. 경남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출자전환을 한 건데요. 보통 출자전환은 채권은행이 손실을 떠안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공평한 손실분담 원칙에 따라 대주주에게 무상감자(주식소각)를 요구하는 게 관례입니다. 당시 채권은행 일부는 이런 부당함을 주채권은행에 강하게 이의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당국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채권단 자율에 따라, 시장 논리에 따라 이뤄져야 할 기업의 워크아웃이 정치, 당국이 개입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겁니다. 금감원도 억울하다는 반응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워크아웃을 추진할 때 채권 금융기관 간 워낙 이해관계가 갈리다 보니 의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아 당국이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러나 우리 역시 이 역할을 안 맡는 게 차리라 속이 더 편하다”고 말합니다.

아무튼 이번 경남기업 사건을 계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정치, 당국에 따라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정부도 구조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이런 일환으로 기촉법에 구조조정 때 금감원의 역할을 아예 법으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또 금감원이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모두 기록에 남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경남기업 사태를 계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정치, 관치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여지없이 보여줘 논란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습니다. 시장에선 당국이 기업 구조조정의 잘못된 선례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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