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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그렇더라. 네가 그럴 거라 말했던 것처럼. 삶은 쉽게 흘러갔어.시간 대부분은’(And so it is/Just like you said it would/ Life goes easy on me/ Most of the time).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이다. 우직하면서 슬프게 흐르는 첼로의 선율에 얹힌 마른 목소리. 삭풍(겨울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매서움 보단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의 나지막한 읊조림. 2002년 발표된 ‘더 블로어스 도오터’(The Blower’s Daughter)는 그렇게 연인들의 송가가 됐다. “앤 소 잇 이즈”. 그의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기 시작하면 시작부터 관객들은 탄성을 쏟는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그렇게 먼 한국에서 ‘쌀집 아저씨’라 불리며 한국 음악팬의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쌀집아저씨’가 8년 만에 새 앨범을 냈다. 앨범 제목은 ‘마이 페이보릿 페이드드 판타지’(My Favourite Faded Fantasy). 그의 화두는 여전히 빛바랜 ‘공허함’이다. 1집 ‘O’(2003)와 2집 ‘9’(2006)의 성공 뒤 축포는 없다. 라이스는 음반사 워너뮤직을 통한 인터뷰에서 “소위 성공이란 것을 마주한 뒤 모든 것이 완벽 했고 좋았지만, 그 순간부터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바스러지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매우 불행해졌고 끝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가라앉았죠. 내가 갖고 싶다고 여겼던 것들을 모두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난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건 정말, 정말로 슬픔 그 이상의 감정이었죠. 거의 심적으로 무너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유가 뭘까. 라이스는 ‘꿈을 잃은 안주’를 얘기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더 이상 앨범을 만드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있더라고요. 지난 몇 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거죠. 순간 그 자리에 몇 분을 우두커니 서서, 내 임종을 상상해봤죠. 그리곤 ‘그래, 지금부터 내게 남은 시간이, 이 지구에서 내게 허락된 시간이 단 1시간이라면? 그럼 내가 원하는 게 뭐지?’를 생각했어요.”
라이스는 어렵게 답을 얻었다. “적어도 죽기 전에는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야겠다”는 것.
늪에 빠진 라이스에 손을 잡아 준 이는 미국 뉴욕 출신의 유명 프로듀서 릭 루빈이다. 라이스는 릭 루빈을 두고 “내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라고 고마워했다. 릭 루빈은 미국의 유명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비롯해 영국에서 최근 가장 주목 받는 신예 싱어송라이터인 에드 시런 등의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한 제작자다.
“새 앨범을 내는 것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혼자 작업을 시작하고 곧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고 곧 그만두고를 반복했기 때문예요. 난 길을 잃고 말았죠. 갈 곳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내가 한 모든 것을 비판하고 믿지 못했죠. 이 때 릭과 함께 하면서 모든 것이 단순해졌죠.”
새 앨범에는 라이스가 ‘9’ 투어를 끝내고 아이슬란드에 머물며 쓴 곡들이 실렸다. 명징한 전자 기타 연주에 애달픈 라이스의 목소리로 사랑의 상실을 노래한 ‘마이 페이보릿 판타지’를 비롯해 곡 후반부 오케스트라와 기타 연주의 화합이 인상적인 ‘더 박스’ 등 8곡이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탓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곡을 썼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곡을 통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욕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것보단 지금은 어떤 결과로 이끄는 수많은 시나리오가 보여요. 그건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것이기에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지만요. 이런 흐름 속에서 내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고 결국 웃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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