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제공] 인간의 운명은 불가항력적인가? 피하고 싶고 벗어나려해도 그럴수록 더 끈끈하게 뒤엉키는 혈육의 정은 특히 더하다.
형사 조대영(김명민)은 소매치기 전과자인 엄마 강만옥(김해숙)에게 받은 뼛속 깊은 상처를 지녔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는 갈등한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범죄가 죽음의 늪까지 이어진 만옥의 숙명도 다르지 않다.
영화 '무방비 도시(이상기 감독·쌈지아이비전 제작)'는 범죄, 액션을 내세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끊지 못하는 혈육의 정을 더 깊이 다뤘다. 운명의 굴레에 섞인 인간의 나약한 속내를 들추기도 한다.
일본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백장미(손예진)는 이름부터 거창한 삼성파를 만들어 동대문과 명동을 점령한다. 일명 '안테나', '기계, '바람'이 한 조를 이뤄 세력이 커지자 반대파의 경계도 심해진다.
장미는 막 출소한 전설의 소매치기 만옥에게 동업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하고 비슷한 시기 만옥의 아들이자 형사 대영은 소매치기 전담반에 투입돼 수사를 시작한다.
대영은 장미가 소매치기란 걸 짐작하면서도 점점 빠져들고 장미의 조종대로 수사의 방향을 잡는다. 이를 눈치 챈 만옥은 아들에게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마지막이란 약속과 함께 장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처연한 눈물에 포커스
이쯤되면 누구나 결말을 예상한다. 하지만 '무방비 도시'가 품은 진짜 매력은 표면적인 스토리보다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처연한 눈물이다.
대영과 만옥이 범죄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빗속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모성으로 꽉 찬 만옥과 떨치고 싶은 운명에 괴로워하는 대영의 대립은 혈육이기 때문에 인간은 절대 자를 수 없는 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혈당 저하로 쇼크 상태에 빠진 민옥이 떨리는 손으로 각설탕을 꺼내 집지만 그만 빗속에 떨어트려 녹아버리는 건 태생부터 불운한 '모자(母子)'의 기구한 운명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김명민과 김해숙의 연기가 정점에 오른 순간도 이 장면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유롭게 뛰던 김명민은 그동안 쌓은 연기력과 대중성을 '무방비 도시'에서 유감없이 풀어냈고 TV 연기자로 인식된 김해숙은 30년 연기 인생 중 가장 과감한 도전을 감행하며 충격을 던진다.
손예진의 변신도 눈여겨볼만 하다.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에서 착실하게 실력을 쌓은 손예진은 '무방비 도시'에서도 어김없이 또래보다는 월등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다만 대영과의 관계를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다가 느닷없이 마지막 장면에서야 만날 수밖에 없던 운명이라고 애써 주입하는 건 아쉬움을 남긴다.
또 하나, 돈을 빼앗으려고 피해자의 손목을 자르거나 칼을 휘둘러 피가 난무하는 장면이 쉼 없이 펼쳐지는데도 '15세 관람 가' 등급을 받은 건 미스터리다. 1월 10일 개봉/15세 관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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