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사' 남친에게 폭행당해 숨진 딸의 엄마입니다"

박지혜 기자I 2021.08.25 08:17:36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가해자는 운동을 즐기며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는 건장한 30살 청년입니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하늘로 보낸 엄마”라고 밝힌 청원인이 지난 24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일부다.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딸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인은 “26살, 제 딸을 사망하게 만든 가해자는 딸의 남자친구”라고 밝혔다.

그는 가해자에 대해 “2021년 7월 25일 새벽 2시 50분경, 딸의 오피스텔 1층 외부 통로와 엘리베이터 앞을 오가며 머리와 배에 폭행을 일삼았다”며 “머리를 잡고 벽으로 수차례 밀쳐 넘어뜨리고, 쓰러진 딸 위에 올라타 무릎으로 짓누르고, 머리에 주먹을 휘두르는 등 도저히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19가 도착했을 때 딸은 이미 심정지 상태로 머리에서 피가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응급실에서는 뇌출혈이 심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심장만 강제로 뛰게 한 뒤 인공호흡기를 달아 놓았다. 딸은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3주를 버티다 하늘로 떠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 가족은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무 일 없는 듯 생활하고 있다. 불구속 수사라고 한다. 가해자는 병원은커녕 장례식에 와보지도 않았다”고 분노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인은 또 “가해자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자신의 힘이 연약한 여자를 해칠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다면 쓰러진 딸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걸 몰랐을까? 응급구조 노력을 하기는커녕 정신을 잃고 숨도 쉬지 않는 딸을 끌고 다니며 바닥에 일부러 머리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술에 취해 스스로 넘어졌다는 허위 신고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특히 “일반인이라도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보면 곧바로 119신고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딸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한참 지나서야 119에 허위 신고를 하고, 쓰러진 딸을 일부러 방치해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며 “이런 행동은 살인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가해자가 말하는 폭행 사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둘의 연인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는 것”이라며 “도대체 이게 사람을 때려서 죽일 이유인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또다시 이대로 넘어간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또 다른 예진이(딸)가 생겨나고 억울하게 죽어갈 것”이라며 “아이나 여성 등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곧 살인과 다름없다. 여성을 무참히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의 구속수사와 신상공개를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청원인은 “연인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를 폭행하는 범죄에 대해 엄벌하는 데이트폭력가중처벌법 신설을 촉구한다. 더이상 예진이와 같은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 청원은 25일 오전 8시 현재 4만97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사전동의 100명 이상이 되어, 관리자가 검토 중인 청원이다.

청원 내용과 관련해 전날 MBN 보도에 따르면 지인들에게 연인 관계인 것을 알렸다며,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자친구를 폭행해 혼수상태에 빠트린 3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남성은 여자친구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것 같다며 119에 거짓 신고를 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경찰은 남성을 상해 혐의로 입건하고 지난달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도주 가능성이 낮고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폭행과 피해자 사망 인과관계를 조사한 뒤 남성의 혐의를 변경해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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