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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의 임기는 9일부터 시작된다. 전날 외교부 직원들과 이임인사를 나눈 강경화 전 장관은 정 장관에 대해 “우리의 대선배이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 주요 정책 입안과 추진에 중추적 역할을 해 오신 만큼, 우리 외교와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지금의 시기에 외교부를 이끌어 나가실 최적임자”라고 평가했다.
1971년 제5회 외무고시로 공직사회에 입문한 정 장관은 30년 넘는 시간을 외교전선에 있었다. 다만 외교통상조정관과 주제네바 대사, 주미대사관 경제통상 담당 공사 등 ‘통상 전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주로 군이나 국정원 출신이 임명되는 국가안보실장에 정 후보자가 임명됐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
다만 정 장관은 이같은 의구심을 불식시키듯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투 탑(two top) 중 한 명으로서 확연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8년 3월 4일 문재인 정부 첫 대북특별사절단장으로 결정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돌아온 후 사흘 만에 이번에는 대미특사로 출국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접견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 장관은 백악관 앞뜰 회견장에서 이 결과를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한반도의 봄’의 설계자로 불리는 이유다.
◇선장은 바뀌었지만 뱃머리는 그대로…외교부 무게추 달라질까
이 때문에 정 장관의 외교부 컴백을 보는 외교부 내 시각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미 정 장관이 설계한 큰 틀 안에서 대미·대북 정책이 이뤄져 왔던 만큼 선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큰 방향전환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히려 청와대가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하면서 뒷전으로 밀렸던 외교부가 실세 장관의 귀환으로 정책 주도권을 쥐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감마저 엿보인다.
실제 정 장관은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과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 안보 상황이 완전히 보장된다면 핵 프로그램을 진행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며 “미국 행정부와 북미대화의 조기 재개를 통한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도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그간의 막전막후를 모조리 알고 있는 정 장관이야말로 최적임자라는 평가다.
북한을 바라보는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명백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과제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실제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2018년 3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초대한 배경에는 정 후보자의 제안이 있었다고 서술했지만, 정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볼턴 전 보좌관은 보좌관이 아니었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 내 대북정책 핵심인물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면 이를 바로잡고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과 제대로 된 상황 인식을 공유해야 할 책임과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김정은 비핵화 의지 확고”…美국무부 “핵·미사일 확산 의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진전을 책임진 정 장관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미 바이든 정부와의 불협화음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장관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장담하자 미국 국무부가 “북한의 핵·탄도미사일과 관련 고급 기술을 확산하려는 의지는 국제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반박에 나섰던 것이 한 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확인할 수도 없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기보다는 그 의지와 관계없이 비핵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 내 ABT(Anything But Trump) 기류가 강한 상황에서 싱가포르 선언을 추인할 것을 강조하는 것 역시 불필요한 마찰을 부를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인권 등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기조에 맞춰 우리 정부도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하고 합의할 수 있는 대북정책을 함께 구성해나가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일 관계 역시 과제다. 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 확정된 상황에서 피고가 이를 거부할 경우, 강제집행은 시간문제다. 우리 정부는 공동기금 조성과 대위변제 등을 일본 측에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측은 판결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