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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부터 한국경제 체력 약화…"美대공황과 유사한 패턴"

피용익 기자I 2020.04.12 11:00:13

한경연 “한국 경제를 둘러싼 정책환경, 과거 미국 대공황 초기와 유사”
사태 장기화 시 외환위기 가능성…“통화스왑 확대로 대비해야”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한국 경제 체력은 쇠약해진 상태였으므로 이번 위기 회복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2일 ‘주요 경제위기와 현재 위기의 차이점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위기 이전 한국 경제는 이미 기초체력이 약화돼 올해 1%대 성장이 예측되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경연은 특히 한국이 대공황 위기를 악화시켰던 미국의 정책과 유사한 패턴을 밟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대공황 초기였던 1933년 국가산업진흥법을 제정해 최저임금제 도입, 최대 노동시간(주 40시간), 생산량 제한 등의 강력한 반시장적 정책을 시행했고, 이는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악화시키고 위기로부터의 회복시간도 지연시켰다는 설명이다. 한국도 반시장적인 소득주도성장으로 경제체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이므로 코로나19 위기 종식 이후에도 경제의 급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경연은 주장했다.

보고서는 GDP 갭(실질성장률에서 잠재성장률을 뺀 수치)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 이미 -2.1%포인트(p)까지 떨어진 상태라는 점을 주목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반영됐던 2009년(-1.2%p)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지금의 위기가 성장률로 반영되면 2020년 GDP 갭은 훨씬 더 추락할 것이라는 게 한경연의 전망이다.

조경엽 한경연 경제연구실 실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위기로부터의 신속한 회복을 이룰 수 있었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라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현금성 복지 확대로 대변되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한국경제의 성장률 하락 폭은 점차 커지고 있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 실장은 “코로나19 위기 없이도 이미 올해 1%대 성장이 예견된 바 있기 때문에 획기적 정책 전환 없이는 현재의 감염 위기 상황이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 경제위기 장기화 시 외환위기 올 수 있어

보고서는 향후 코로나19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위기 이전의 안정세를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주식시장의 경우 주요국의 경기부양책에 따라 주가의 단기적 급등이 발생할 수 있으나, 실물경제의 호전 없이는 결국 하향 추세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가가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S&P500 약 5년, 코스피 약 3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이번 위기의 경우에도 주식시장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외환보유고 수준에서는 당장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경엽 실장은 “수출부진 장기화로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고 경제 펀더맨틀 약화가 지속되면서 자본유출이 확대된다면, 외국투자자들의 심리적 불안이 증폭되면서 외환보유고가 부족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경제위기 장기화에 대비해 미국과의 통화스왑 확대는 물론 미국과 상시적·무제한 통화스왑을 맺고 있는 국가들(일본, 영국, 스위스 등)과의 통화 스왑 체결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세계교역 증가율 6%p 이상 하락 가능성

한경연이 코로나19 확산이 세계 무역에 미치는 충격을 분석한 결과도 주목된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을 가정하면 세계 교역 증가율은 약 6%p 하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고서는 과거 세계적 경제위기 시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되었던 사례를 본다면, 이번 위기에도 각국이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특히 과거 위기 사례를 고려하면 관세율보다는 비관세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조 실장은 “세계 경제의 공급 및 수요 양 부문에 동시에 충격이 발생함에 따라 이번 위기가 세계무역에 미치는 파장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한 강도로, 더 장기간 지속될 수 있으므로 세계 교역량 증가율 감소는 6%p 이상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한국의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여러 정책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정책기조 전환하고 재정여력 확보해야

보고서는 현재의 위기를 견디고 코로나19 종식 이후 조속한 회복을 위해서는 정책기조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그동안의 정책 실험은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으므로 정책기조의 전환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19 종식 후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재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므로 재정여력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한 두 번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재정의 지속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의 재구조화를 통해 재정여력을 확보하고, 재정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재정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실장은 “생산적인 곳에서 세금을 걷어 비생산적인 곳으로 재원을 이전하는 정책은 경제의 비효율성을 증가시키고 성장을 둔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효율성 중심의 재정운용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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