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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람 그리고 법률]현금 결제 권유의 `달콤한 유혹`

이성기 기자I 2019.09.21 08:24:00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 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법무법인(유) 화우 전완규 변호사] 우리나라만큼 언제, 어디에서든 신용카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보유 비율이나 결제 비중 역시 세계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주변에서 물건 값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필자 역시 현금으로 산 마지막 물건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나오면서 카드를 건넸더니 “현금으로 결제하면 10% 할인 혜택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공교롭게 핸드폰과 카드만 가지고 있어서 10% 할인 혜택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았다. 달콤한 유혹을 뒤로 한 채 미용실을 나오면서 `유독 현금 결제에 대해서만 할인 혜택을 제시한 이유가 뭘까`라는 궁금증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거래 대금이나 지급방법은 거래 당사자가 얼마든지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니, 현금 결제에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은 위법이 될 수 없다.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고,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적은 액수의 대가를 지급할 수 있는 기대하지 않은 기회를 받는 것이므로, 현금 결제에 따른 할인 혜택을 못하게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미용실이 현금 결제에 대해 할인 혜택을 권유하고 할인된 금액을 주고 받는 것은 민사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왜 굳이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유독 현금 결제에 대해서만 할인 혜택을 권유하였을까. 이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이유를 빼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먼저 사업자가 부가가치세를 적게 내기 위해 현금 결제 할인 혜택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사업자는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면서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 받는 자로부터 부가가치세를 징수해 세무서에 납부해야 하므로, 부가가치세의 부담 주체는 사업자가 아니라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 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즉, 사업자는 우리 세법상 부가가치세를 징수해 세무서에 전달하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오히려 사업자가 카드나 현금 중에서 어떤 것으로 대가를 받든, 받는 대가에는 그 대가의 10%에 해당하는 돈이 부가가치세이므로(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고 받는 대가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돼 있다고 본다), 사업자가 받는 대가가 적어지면 사업자가 받는 경제적 이익 또는 소득 역시 적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업자는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 받는 자로부터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가액과 함께) 받은 부가가치세를 그대로 세무서에 납부해야 하므로, 매출 감소라는 손해를 굳이 감수하면서 현금 결제에 대해서만 할인 혜택을 권유할 합리적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사업자가 소득을 적게 신고해 소득세나 법인세를 적게 납부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금 결제 할인 혜택 권유를 선택한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즉, 사업자가 현금으로 받은 대가를 소득으로 부가가치세와 함께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으면, 현금 거래는 객관적인 증빙이 없어 이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세무서는 그 소득을 파악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사업자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 현금 결제로 받은 돈 일부를 자신의 소득에서 제외시켜 소득을 적게 신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금 매출 일부 누락(소득의 과소 신고)은 부가가치세 과소 신고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 받은 자는 사업자에게 세무서에 납부할 부가가치세를 공급가액과 함께 지급하는데, 사업자가 현금 매출과 관련해 받은 부가가치세를 그대로 세무서에 신고·납부하면 자신의 현금 매출 관련 소득 역시 그대로 세무서에 드러난다. 현금 결제에 따른 할인 혜택 권유의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세 과소 신고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업자는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 받은 자로부터 받은 부가가치세를 세무서에 그대로 납부하지 않고 자신이 갖게 되므로, 이른바 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배달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업자가 현금 결제에 할인 혜택을 권유하면서 받은 대가를 한 푼도 빠짐 없이 제대로 세금으로 신고하고 납부하면, 할인 혜택을 통해 현금으로 대가를 받든, 신용카드로 대가를 받든, 세법 등 어떠한 법적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업자가 한 푼도 빠짐 없이 세금을 신고·납부할 것이라는 선의의 기대를 갖고 자발적으로 현금으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권유를 받은 경우, 그 사업자가 한 푼도 빠짐 없이 세금을 신고·납부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할인 혜택을 받아 들이는 것은 지나친 믿음, 한 걸음 나아가 세금 탈루의 방치가 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더욱 필요하고 절실한 요즘 같은 시대에, 현금 결제에 할인 혜택을 권유 받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경제적 혜택과 사업자의 세금 탈루 방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지에 대한 달콤하고 씁쓸한 유혹이다.

☞전완규(全完圭)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유) 화우 조세부그룹장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조세협회(IFA Korea) 발전이사 △한국지방세연구원 법령해석지원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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